최근 출간된 <레이캬비크 101> (전2권ㆍ들녘 발행)은 그간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은 아이슬란드 문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반가운 소설이다. 클럽에서 하룻밤을 보낼 여자를 꾀거나 TV와 포르노 비디오를 시청하는 일로 소일하는 34세 백수 힐누어, 그가 동침 상대와 어머니의 동성 애인을 잇따라 임신시키면서 겪는 소동을 경쾌한 터치로 그린 이 소설은 16개국에 번역됐다. 레이캬비크>
이 작품을 쓴 하들그리뮈르 헬가손(51)은 화가로 출발해 소설, 시, 희곡, 시나리오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현지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하는 '세계작가축제' 참석차 5월 방한하는 헬가손과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_ 주인공 힐누어는 독특한 인물이다. 어머니에게 기식하면서 섹스에 탐닉하다가 두 여자를 임신시키고도 일말의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힐누어는 모든 것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자다. 미디어가 쏟아내는 비상식적 정보를 여과없이 머릿속에 주입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소비사회의 희생자다. 1990년께부터 5년 동안 힐누어라는 인물을 구상해 1995~96년 소설을 써서 발표했다. 당시 내가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에서 힐누어인 척 목소리를 바꾸고 그가 함직한 말을 쏟아내면 여지없이 청취자들에게 '그 녀석을 당장 쫓아내라'는 항의 전화가 왔다. 덕분에 소설을 쓸 자신감을 얻었다."
_ 소설의 여러 구절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표나게 차용했다.
"그렇다. 예컨대 힐누어가 유일하게 고민이란 걸 하는 때가 어머니의 동성애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인데, 햄릿이 그랬듯 그 또한 어머니의 성적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나는 작품에서 고전을 '가지고 노는' 작업을 종종 한다. 작품에 깊이를 더해 독자에게 지적 흥미를 주기 위해서다."
_ 아이슬란드에서 작가로 사는 일은 어떤가.
"아이슬란드는 작가들의 천국이다. 13세기에 이미 유럽 최초의 소설이라 불리는 영웅전설(사가ㆍsagas)이 쓰여졌고, 1955년 할도르 락스네스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만큼 문학적 전통이 깊은 나라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 인구는 30만명이지만, 출판시장 규모는 인구 500만 명 국가와 맞먹는다. 술집에 가면 내가 작가인 걸 알아본 사람들이 '소설로 써달라'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 다반사다."
_ 5월 한국에 온다고 들었다.
"내 차가 한국산이라, 운전할 때마다 한국에 있는 느낌이다. 아이슬란드에선 한글을 '그림 문자'라고 부른다. 문인뿐 아니라 시각예술가에게도 완벽한 문자라고 생각한다. 한국 작가들을 만날 생각에 매우 설렌다. 이 차디찬 나라에서 우선 따뜻한 인사를 보낸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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