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부활절 전야 미사를 집전한 3일 밤(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가톨릭 교회가 연루된 성 추문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 교황의 2차 사과나 언급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황은 지난달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성추행에 관해 사과하는 사목서신을 보낸 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교황은 4일 바티칸이 발표한 부활절 메시지에서도 "영적이며 윤리적인 회개"를 전했을 뿐, 성추행 사태에 대해선 역시 침묵을 지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교황이 퇴위함으로써 역사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관측을 취재하기 위한 것"이라며 퇴임 압박을 받고 있는 위기의 교황과 가톨릭을 조명했다.
교황청은 비난이 고조되자 '용납할 수 없는 중상모략'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연일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교황에게 조언할 수 있는 위치인 설교자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신부가 2일 성추문 확산을 차단하려, 유대인 친구의 서한을 인용해 "특정 집단을 전형화하고 개인적 책임을 전체에 전가해 비난하는 것은 반유대주의의 가장 수치스러운 단면을 연상케 한다"고 말한 것이 되레 유대인계 등 여론의 뭇매를 초래했다.
4일에는 또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친했던 오스트리아 한스 헤르만 그뢰어 추기경이 수십년간 2,000명 이상의 소년들을 성추행했지만 당시 교황이 적극 비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당시 추기경이었던 요제프 라칭어 현 교황이 조사하려 했으나 바티칸에 가로막혀 좌절됐다는 크리스토프 숀번 오스트리아 추기경의 폭로를 전했다.
이래저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뉴스위크는 최근 "교황은 평생을 신학계와 바티칸 권력층에서 보내 현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분석했고, AP 통신은 "일을 함께하는 부역자는 있으나 조언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교황이 주로 혼자 식사하는 등 전임자들보다 폐쇄적 성격이라고 지적했다.
교황과 교회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영국 성공회 수장인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까지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그는 3일 B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가 어린이 학대문제를 제대로 처리 못해 모든 신뢰를 잃었다"며 "아일랜드에서는 사제 복장을 하고 길거리를 나서기 힘들 정도"라고 심각성을 강조했다.
채지은 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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