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식구가 겨우 몸을 누일 곳은 3.3㎡(1평), 높이 1m의 흙 집. 집안엔 음식찌꺼기가 눌어붙은 밥그릇과 진흙투성이의 낡은 군화 한 짝, 반쯤 남은 자전거 안장과 녹슨 낫, 누런 종이뭉치, 해진 누더기 옷도 널브러져 있다. 찬 흙 바닥은 오줌을 지린 흔적 탓인지 파리떼가 들끓었다.
파리떼에 집을 내준 채 흙벽에 기댄 그들도 집을 닮았다. 먼지와 콧물이 얼굴에 엉겨 붙은 한 살배기 어니따는 나오지 않는 엄마의 메마른 젖을 번갈아 빨아댔다. 복수(腹水)가 가득찬 배를 움켜진 버럿(8)은 그저 허공만 바라봤다. 아빠와 엄마의 팔 다리는 앙상했고, 상처투성이 맨발이었다.
커르케 다마이(41)씨 가족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남쪽으로 700㎞쯤 떨어진 꺼이랄리(Kailali) 지역의 빈민촌에 살고 있다. 한때 13명의 자식을 거느린 네팔 판 '흥부네'이었지만 가난이 9명을 앗아갔다. 몇몇은 인도 등으로 돈 벌러 떠나거나 팔려갔고, 일부는 굶어 죽었다.
입을 줄였지만 굶주림은 여전히 다마이 가족의 일상이다. 유일한 밥벌이가 구걸이지만 그마저 어려워 4~5일씩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씻을 물은커녕 마실 물도 없다. 전기도 없고 땔감도 없다. 입에 풀칠하는 것이 가족의 존재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달 29일 가족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지상 최고의 저녁밥상을 받았다. 제비가 박씨라도 물고 온 걸까? 실은 이날 탤런트 변정수(36)씨 가족이 다마이 가족을 찾았다. 변씨 가족은 5년 전부터 매년 함께 방글라데시 인도 케냐 베트남 등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변씨는 국제구호단체인 굿네이버스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식량과 학용품 등을 선물하러 온 변씨는 다마이 가족이 애처로워 제 손으로 밥을 해주기로 했다. 집 앞 작은 화덕에 처음으로 연기가 피어 올랐다. 식구들의 얼굴에도 따스한 미소가 번졌다. 변씨가 요리를 하는 동안 버럿은 주스 세 팩을 순식간에 해치우더니 스케치북이며 색연필에 흠뻑 빠졌다. 어니따는 20㎏ 쌀 포대 위에 앉아 재롱을 떨었다. 부모는 연신 두 손을 모아 "뎐녀밧"(고마워요)이라고 말하며 변씨를 도왔다.
카레 한 그릇의 온기가 잠시나마 그들의 삶을 데웠다. 가족은 수북한 밥 한 그릇씩을 맨 손으로 뚝딱 먹었다. 어니따는 얼굴에 흰 밥풀을 가득 묻히고서 변씨의 입에 밥풀을 갖다 댔다. "난생처음 배불리 밥을 먹었다"는 네 식구는 날이 어둑해지자 변씨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부디 오래 살아서 다음에도 우리 가족을 찾아주세요." 변씨가 왈칵 울었다. "열심히 살아서 오래도록 곁에서 지켜줄게요." 변씨가 어렵게 발걸음을 떼자 빈민촌 어느 곳에선가 또 다른 아이의 울음이 따라왔다.
같은 날 변씨의 남편 유용운(43)씨는 딸 채원(12)이와 근처 벽돌공장을 찾았다. 4년 전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에 걸린 아버지가 숨진 뒤 벽돌을 날라 생계를 잇는 모자(母子)가정의 캐런(12)과 함께 벽돌을 날랐다. 캐런은 한 번에 벽돌 16개를 머리에 이고 100m를 갔다. 하루에 30번을 옮기면 우리 돈으로 600원(35루피)을 번다. 유씨는 "건강한 성인인 나도 10㎏ 넘는 벽돌들을 머리에 올리면 어지럽고 힘든데 아이들이 노동현장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너무 딱하다"고 했다. 채원이도 "동갑인 캐런이 학교도 못 가고 힘들게 돈을 벌고 있다"고 가슴을 움켜쥐었다.
현지 봉사자가 전한 아동노동의 현실은 비참했다. 고성훈 굿네이버스 네팔 지부장은 "정부에서 아동노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지원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노동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벽돌공장 주인들은 아이들의 싼 노동력을 악용해 8배의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누추한 현실을 버티게 하는 건 꿈이다. 캐런은 "당장은 먹고 입고 공부하는 것조차 힘들지만 나중에 의사가 돼 아픈 엄마를 고쳐주고 싶다"며 살짝 웃었다.
이들의 꿈이 이뤄지길 소망하는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굿네이버스에 따르면 국내 회원이 후원하는 네팔 케냐 차드 등 23개국 결연아동 수가 2만7,578명에 달한다. 국내의 해외아동 후원자 수는 5만4,261명(2009년 12월 기준)으로 전체 회원의 절반 남짓(53%)이다. 이중 네팔 꺼이랄리 지역의 결연아동 수는 1,000여명이다.
결혼 10주년을 맞아 2005년부터 결연아동지원을 시작한 변씨 부부는 전세계 10여개국에 가슴으로 낳은 아이 17명을 돌보고 있다. 올해 안에 3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아동 1명당 매달 3만원씩 후원한다.
변씨가 최근 드라마 출연료로 기부한 1억원 중 5,000만원도 꺼이랄리 지역 아동복지센터 건립에 쓰인다. "사람들이 물어요. '매년 이렇게 먼 곳까지 와 고생을 하며 아이들을 돕느냐'고. 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가 조심스레 덧붙눼? "오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아요. 아이들의 웃음을 보고 있노라면 제 삶이 더 행복해지거든요." 그는 영락없는 엄마였다.
누구나 씀씀이를 줄이고 결심만 하면 아이들의 웃음을 경험할 수 있다. 후원문의 (02) 6717-4000(www.gni.kr), 국민은행 463537-01-002778 (예금주: 굿네이버스)
꺼이랄리(네팔)=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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