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남제주군 마라도 남서쪽 370마일 동지나해 해상. 오징어 채낚기 어선 602 하나호가 높은 파도에 휩쓸려 침몰했다. 구명대를 타고 탈출한 선원 21명은 표류 12시간 만에 인근 해역에서 조업을 하다 긴급구조신호를 듣고 수색에 나섰던 선박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됐다. 그러나 구명대에 하나호 선장은 없었다. 유정충 선장은 침몰 직전까지 조타실에 혼자 남아 긴급구조신호를 발신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유 선장이 목숨을 걸고 타전한 긴급구조신호 덕분에 선원들은 생명을 건졌다. 20년 전인 1990년 3월 1일의 일이다.
■ 배에서 선장은 절대적 권한을 갖는다. 선원에 대한 지휘명령권, 징계권, 강제조치권은 물론 배에서 발생한 범죄를 수사해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는 사법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다. 큰 권한 만큼 의무도 막중하다. 선장은 여객을 태우거나 화물을 싣기 시작할 때부터 여객과 화물을 모두 뭍에 내려놓을 때까지 배를 떠날 수 없다(재선 의무). 조난 선박은 반드시 구조하고, 이상 기상은 다른 선박에 통보해야 하며, 조난 위험에 처하면 선박과 인명ㆍ화물 구조에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호 유 선장이 끝까지 조타실을 지킨 이유는 이 같은 법적 의무 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 조난 위험에 처했을 때 선장이 최후까지 배에 남는 것은 바다 사나이들 세계의 불문율이다. 어쩌면 그것은 배를 처음 탄 순간부터 그들의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적 행위이자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일 지 모른다. 거친 바다에서 선원들이 두말없이 선장의 지휘ㆍ통솔을 따르는 것은 위급 시 선장이 목숨을 걸고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민간 선박의 선장과 선원들이 그럴진대 상명하복의 엄격한 군율과 군기가 생명인 군함의 함장과 수병의 관계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 천안함 최원일 함장은 아직까지 백령도 해역에 있다. 생존 부하 5명과 함께 광양함에 머물며 실종자 구조작업을 돕고 있다. 그는 지금 어떤 심경일까. 큰 죄책감에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 당시 그가 실종자 46명 가운데 한 명의 부하라도 더 구할 수 있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것은 모든 조사가 완료된 뒤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최 함장이 침몰하는 천안함에 최후까지 남아 58명의 부하들이 침착하게 탈출토록 한 것은 확인됐다. 그러니 그가 짊어질 책임과는 무관하게 더 이상 인터넷 등을 통해 험하고 거칠게 비방하는 행위는 삼갔으면 좋겠다. 그들은 바다의 사나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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