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통화정책 향방이 최근 지대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불황의 그늘을 아직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출구전략을 마냥 미루기도 곤란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김중수 신임 한은 총재가 바로 어제 집무를 시작했다.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당분간 없어야 한다고 공언해 온 터라, 신임 총재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간의 이목이 쏠려 있다. 과연 신임 총재는 통화정책 결정에서 한은의 독립성을 제대로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독립성 지키는 게 진정한 협조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한은 독립성과 정부와의 정책 협조는 양자택일의 문제로 취급되는 듯하다. 한은이 독립성을 지키면 정부와 협조하지 않는 것이고 독립성을 포기하면 협조하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이다.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한마디로, 중앙은행이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만이 정부에게 진정으로 '협조'하는 유일한 길이다.
왜 그런가. 민주국가의 정부는 단기간에 국민들에게 경제성장과 실업감소와 같은 가시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의 정부든 단기적 경기부양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을 흔히 보인다. 그러나 통화정책의 경우, 중장기 정책시계(policy horizon)에서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의 실체는 대차계약이어서 시간의 경과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단기적으로 결정되는 통화정책이라면 정책 일관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해 실패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바라는 정부라면, 중장기 시계를 가진 중앙은행에게 법률적 책무를 부과한 후 통화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위임한다.
그러므로 정부는 중앙은행을 통제하려 들면 안 되며, 늘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정부 자신의 단기 정책시계를 중앙은행에 강요하다가는 자칫 국민경제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앙은행 독립성의 기본 취지이다. 대신, 중앙은행에게는 자신이 수행한 통화정책의 성과를 책임지도록 하는 장치들이 겹겹이 부과된다.
이렇게 본다면,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통해 정부의 전반적 정책방향을 견제하는 것이 현대적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이다. 그래야만 정부의 경제정책이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적절한 균형(balance)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앙은행은 정부가 도모하고자 하는 단기 경제정책의 방향이나 강도를 중장기 정책시계를 통해 조정하는 운명을 태생적으로 타고난 셈이다.
정책균형 위해선 견제가 필수
정부의 전반적 정책 방향이 자신의 중장기 정책시계에 부합하는 경우, 중앙은행은 정부와 때로는 같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경제정책이 전반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중앙은행이 견제해야 하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더 많다. 이 때,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통해 정부의 경제정책을 견제하면서 전체 균형을 잡는 일은,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자신을 법률적으로 독립시킨 정부에게 중앙은행이 진정으로 협조하는 유일하고도 바람직한 방식이다.
지난 3월 중순 내정된 직후 김중수 신임 총재는, "한은 독립은 대통령으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물가냐 성장이냐의) 선택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 늦진 않았다. 신임 총재가 한은 독립성을 통해 정부와 진정으로 협조하는 방식을 더 늦기 전에 터득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김홍범 경상대 사회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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