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은 거셌고 파도는 사나웠다. 천안함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의 속은 시꺼멓게 타 들어갔지만 백령도의 하늘은 무심하기만 했다. 사고 이후 최악의 기상 상황은 한 명의 실종자라도 구하기 위해 연일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는 구조대원들의 발을 꽁꽁 묶어놨다.
천안함 사고 엿새째인 31일 오전 백령도 남포리 장촌포구 인근에 설치된 해병대 수색본부앞 해변. 여느 때 같으면 실종자 수색 작전으로 분주해야 할 해병대원들은 상륙작전용 고무보트(IBSㆍInflatable Boat Small) 주위에 앉아 하늘만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비슷한 시각 용기포구 근처에도 조업을 나가지 못한 어선들만 늘어서 있었다.
군 관계자는 "고무보트를 띄우지 못할 정도로 파도가 거세고 짙은 안개까지 끼어 수색 작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지만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물 흐름이 느려지는 정조(停潮) 때에 맞춰 잠수사를 투입하려던 군 당국은 오후까지 모든 수색작업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이날 백령도 앞바다의 기상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 초속 8~12m의 강한 바람과 최대2.5m 높이의 파도,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사리로 유속은 최대 5.6노트에 달했다. 아무리 숙달된 베테랑 잠수사라 해도 이 같은 상황에서 물 속에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궂은 날씨는 인천과 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 뱃길마저 끊어 놓았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군 당국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구조 작업에 전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고 한주호 준위와 같은 불상사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잠수사들의 안전교육과 건강점검을 실시한 군 당국은 기상 조건이 나아지는 대로 구조활동에 나서기 위해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해난구조대(SSU) 전문장교인 송무진 중령은 "해군특수전여단 수중파괴팀(UDT) 요원들은 전투요원이기 때문에 심해 잠수에 적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명예와 사기로 임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임무 한계를 넘어 악전 고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각종 재난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펼쳐온 중앙119구조대도 심해잠수 전문대원을 중심으로 백령도에 급파돼 30일부터 수색작업에 합류했다.
시간만 속절없이 흘러가자 이들을 지켜보는 백령도 주민들도 애를 태우긴 마찬가지다. 25년간 어업에 종사해 온 배종진(62)씨는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 어선들도 모두 출항대기 상태"라며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구조 작업을 해야 할 잠수사들을 생각하니 안타깝다. 실종자를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날씨가 빨리 좋아져 구조작업이 원활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날씨. 기상청은 3일까지 궂은 날씨와 수위가 높아지는 사리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기상청 관계자는 "1일 오후부터 찬 바람이 점차 강하게 불면서 기온이 내려가 추워지고 물결도 2~4m로 높아질 것"이라고 말해 앞으로도 구조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전망이다.
백령도=이성기 기자
김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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