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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스무 살 군인, 내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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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스무 살 군인, 내 형님

입력
2010.03.3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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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형은 1976 년 12월 31일 밤 세상을 떠났다.

외갓집에 있던 작은 형과 나는 마을회관 확성기를 통해서 큰 형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마을에서 유일한 전화기가 회관에 있었다. "아아, ○○이 사망했다고 하니 집안 분들은 속히 와서 확인을 해주십쇼. 감사합니다."

작은 형이나 나는 뭔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회관 아저씨가 오늘따라 일찍 술에 취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황급히 회관을 다녀온 외가 쪽 형은 아주 분명하게 소식을 확인해 주었다.

군 복무하다 사고로 순직

작은 형과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작은 형의 울음은 고통스럽게 몸 어디 깊은 곳에서 나는 것이었다. 내 울음도 그때까지 어떤 울음과도 다른 종류의 울음이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작은 형이 중학교 3학년이었다.

다음날 첫 기차를 타고 집으로 떠났다. 가는 동안 내내 할머니는 뭔가 잘못 전해진 것이 틀림없다고 우리를 위로했다.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할머니의 그 말은 신기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울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웃지도 않았다. 기차 맞은 편 자리에는 내 또래의 예쁜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 여학생의 파란색 운동화 옆면에는 흰색 줄이 세줄 있었고, 그 중의 하나에는 '보라'라는 이름이 볼펜으로 쓰여 있었다. 그 상황에서 그런 것이 보인다는 게 미안했다. 큰 형에게.

집에는 이미 친척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엄마는 우리를 보고 다시 우셨고, 아버지는 침통한 표정으로 친척 아저씨들과 담배를 나눠 피우고 계셨다. 수송부대에 있던 형은 수송 작전 도중 군용 트럭 사이에서 짐칸을 점검하다가 뒤차의 급출발 과실로 순직했다고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이미 춘천 어디 국군병원에서 형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셨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살아 있었다며 엄마가 오열했다. 큰 형은 스무 살이었다.

그 한 달쯤 전에 수송부로 배속되기 직전, 외박을 나왔을 때 엄마는 닭도리탕을 해줬다. 나는 먹지 않고 형이 먹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큰 형이 나 땜에 못 먹겠다고 다리 하나를 건네주며 웃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형의 모습이었다.

겨울은 길었다. 하루에 한 번씩 동화책에서 읽었던 대로 볼을 꼬집어댔다. 꿈이라면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통증은 생생하고, 꿈은 피곤한 밤에 가위에 눌린 것처럼 끔찍하게 깨지 않았다. 형은 언젠가 가출했다 돌아오며 그랬던 것처럼 등 뒤에 검은 색 기타를 하나 메고 씩 웃으면서 불쑥 집에 들어설 것 같았다. 아주 집요하고 절실하게 나는 형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 내내 나는 아팠다.

그러나 죽음은, 절대로, 그 사람의 얼굴을, 목소리를, 기타 치는 모습을, 그 불량스런 걸음걸이를, 몸에서 나던 담배 냄새를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이었다. 형은 영원히 내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어느 영겁의 틈으로 사라진 것이다. 인생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남은 우리들도 이승에 잠깐 머물다 언젠가는 그런 영원 속으로 뿔뿔이 흩어질 것이었다. 그런 생각에 비로소 몸이 나았다.

죽음과 같은 부모의 상실감

학교에 다시 나갔다. 친구들은 방학 동안 내가 아주 웃기는 녀석이 됐다고 했다. 나는 반 아이들의 투표로 오락부장에 선출됐다. 부엌에서는 늘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울지도 못하시던 아버지는 끝내 신경정신과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눈빛은 공허했다.

자식의 죽음은 슬픔도 고통도 아니었다. 그건 동종의 세포가 망실된 것을 몸의 전 세포가 통각(痛覺)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부모에게는 존재의 한 축이 완전히 괴멸되는, 살아서 경험하는 또 하나의 죽음이었다. 천안함의 장병들이여, 살아있어라.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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