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다음 날인 27일, 에다노 유키오 일본 행정쇄신장관이 "조선반도가 식민지로서 침략을 당하는 쪽이 된 것은 역사적인 필연이었다"란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천안함 침몰사태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시대착오적 인식에 갇혀있는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안타깝다.
안 의사는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그는 일제의 주장처럼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전쟁포로였다. 실제 안 의사는 함경도 전투에서 붙잡은 일본군 포로들을 국제공법과 인도주의를 들어 석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제는 일본법으로 재판하여 교수형에 처하고 소나무 침관에 넣어 이름도 적지 않은 채 몰래 매장했다.
안 의사의 청청한 기상과 숭고한 뜻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은 "안중근으로부터 조선반도와 중화를 통틀어 진정한 항일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위안스카이, 저우언라이 등 중국 정치가와 지식인들뿐 아니라 일반시민들에게도 안 의사는 항일운동의 큰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현직 국회의원 152명이 안 의사의 호칭을 장군으로 바꾸자는 청원에 서명했고 육군은 장군 칭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안 의사를 소재로 한 연극과 뮤지컬, 다큐멘터리도 나왔다. 그러나 그가 지하에서 애끓게 원하는 것은 장군 진급, 기념물 건립이나 일회적인 추모행사가 아니라 유언에 남긴 두 가지 뜻을 이루는 것이다.
첫째는 동양 평화의 실현이다. 그의 유지 중 조국독립은 완성되었으나 냉전의 잔재가 남아있는 동북아의 평화는 아직 미완성이다. 하토야마 일본 총리는 취임공약으로 동북아공동체를 내세웠지만 안 의사는 이미 100년 전에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다. 안 의사는 동양평화론에서 동북아 3국이 대등한 주권국가로서 상호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평화를 그렸다. 그의 사상은 동북아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바를 미리 제시한 것이다. 한중일 3국은 안 의사의 뜻에 따라 경제, 환경, 안보, 문화 등의 분야에서 동북아공동체 건설을 통한 동양평화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지금부터라도 상호 협력해야 한다.
둘째는 '우리 국권이 회복 되거든 나의 뼈를 조국으로 반장(返葬)'하라는 유언을 받들어 안 의사의 유해를 모셔오는 일이다. 필자는 연전에 안 의사가 수감되었던 뤼순 감옥소와 그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공동묘지를 둘러보았다. 이름도 없는 무덤, 묻힌 장소도 표시되지 않은 1,000여 기의 유해 가운데서 안 의사의 유해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아파트 공사를 위해 공동묘지는 파헤쳐지고 있었다. 한중일 3국이 진심으로 동북아의 평화를 기원한다면 일본은 안 의사의 무덤 위치 기록을 공개하고, 중국은 공동묘지를 개방해야 하며, 한국 정부는 유해를 발굴하여 조국으로 모셔오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1910년 우리 겨레는 나라 잃은 비통함에 몸을 떨었다. 100년이 지난 오늘의 대한민국은 G20 의장국으로 만국 앞에 당당한 나라로 변신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배경에는 안 의사의 정신과 사상이 큰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한다. 국력이 커진 만큼 이제는 우리 후손들이 안 의사의 유해를 모셔오고 동북아공동체를 통한 동양평화를 완성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안중근 의사에게 진 빚을 모두 갚는 것이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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