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밤 이은수(22ㆍ1월 의무병 입대) 이병은 천안호 갑판 밑 목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는 이 이병의 동기 한 명이 빨래 중이었다. 갑자기 '쾅' 하는 폭발음이 귀청을 때렸다. 순식간에 목욕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으로 변했다. 쓰고 있던 안경까지 잃어버린 이 이병과 동료는 어두운 선실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때 "침착하게 옷부터 입고 갑판 위로 올라가라"는 한 선임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체 벽을 더듬으며 천천히 갑판 위로 올라갔다. 갑판에는 먼저 황급히 탈출한 다른 병사 수십 명이 몰려 있었다.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후임병들은 급한 마음에 바다로 뛰어 내리려 했다. 하지만 선임병들은 "배가 완전히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있다. 먼저 구명조끼부터 입고 구조를 기다려라"고 지시했다.
얼마 후 구조대가 큰 배(참수리호로 추정)를 이끌고 천안함 근처로 다가왔다. 선임병들은 그러나 "배가 너무 커서 천안함 가까이 오면 충돌 위험이 있다"며 손짓으로 막았다. 얼마 후 해경함정의 고속단정이 도착했고 소방호스를 잡은 채 차례차례 탈출할 수 있었다.
같은 시각 천안함 갑판 위 조타실에서 근무 중이었던 최광수(22ㆍ2008년 5월 입대) 병장은 '꽝'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곧바로 배 안은 암흑 천지가 됐고 배가 급격히 옆으로 기울었다. 조타실 내 10여명의 병사들은 서로 뒤엉켜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전쟁이 났다'고 생각한 최 병장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휴대용 칼을 꺼냈다. 구명조끼는 곳곳에 비치돼 있었지만 칼로 끈을 풀어야 착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 쪽으로 올라가 미리 탈출해 있던 동료들과 함께 정신 없이 조명탄을 터트렸다.
그때 어디에선가 "함장(최원일)이 갇혀 있다"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최 병장은 다른 사병들과 함장실로 간신히 다가가서 도끼로 문을 부수고 함장을 갑판 위로 끌어올렸다. 이후 배가 급격히 가라앉기 시작했고 최 병장은 최 함장 및 동료들과 함께 바다로 뛰어내렸다. 나중에 보니 그는 최 함장과 함께 해군 배가 아닌 해경 배에 구조됐다.
이 같은 상황은 이 이병과 최 병장이 27, 28일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와 국군수도병원에서 각각 아버지에게 전하면서 알려졌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설명한 상황도 비슷했다. 김 장관은 29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 "최 함장이 함장실에서 기절했다 깨 보니 출입구가 천장에 가 있었고, 부하들이 문을 뜯은 뒤 소방호스를 내려 줘 이를 잡고 올라갔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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