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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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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딸기

입력
2010.03.2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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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 붉은 혀들이 가득 담겨 왔다

찬송 부르는 성가대원 입속의 혀처럼 가늘게 떨고 있었다

네 혀가 내 혀 위에 얹혀졌다

두 개의 혀에서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세상의 온갖 맛을 음미하다 이제 돌아와 우리는 좁쌀 같은 돌기들을 다소곳이 맞대었다

너는 입속에 혀만 있고 이빨이 없는 사람 같았다

몸 저린 뿌리가 내장 사이로 번개처럼 뻗어내리고, 전기처럼 차디찬 시냇물이 머릿결을 타고 흘러내렸다

깨물면 붉은 물이 돋을까 봐, 나는 얼굴이 한정없이 게워낸 붉은 것들을 가만히 물고만 있었다

눈 맞은 나뭇가지처럼 포근한 네 개의 팔이 얽히고, 접시 가득 이 키스를 거두어들였다!

그 작은 돌기들이 모두 네 씨앗들이었다는 말은 내가 네 혀를 다 짓이긴 후에야 들었다

● 딸기의 계절이 돌아왔으니, 딸기를 먹는 방법을 배워보죠. 우선 딸기를 흐르는 물에 잘 씻습니다. 물은 차가울 것이고 딸기는 그보다는 따뜻하겠죠. 다 씻고 나면 그릇에 놓인 딸기들은 차가운 물을 흡수해서 빨갛게 반짝일 겁니다. 그 딸기들을 바라보세요. 빨간색을 바라보세요. 그 다음에는 형태를 바라보세요. 씨도 있을 겁니다. 꼭지는 초록색이겠죠. 어떤 냄새가 나는지, 물기 묻은 표면은 어떤 느낌인지도 느껴보세요. 태어나서 단 한 번이라도 딸기를 제대로 먹어봅시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이제는 딸기를 입에 넣어보세요. 입으로 와 닿는 그 느낌, 그 맛, 그 차가움을 느껴보세요. 그 다음에는 깨물어보세요. 이제부터는 다 먹어치우는 겁니다. 먼저 빨강, 그 다음에 그 모양, 초록, 풋풋한 냄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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