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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야속한 TV 화면

입력
2010.03.2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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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2월 22일 오전 11시10분 경남 통영 앞 바다. 육지에서 불과 300m쯤 떨어진 해상에서 예인정(YTL)이 뒤집혀 해군 159기 훈련병 109명과 해경11기 위탁생 50명이 사망했다.

연말 진해 해군교육단에 입소해 6주 훈련을 마치고 이순신장군 유적지인 한산도 제승당과 통영시 충열사를 참배한 뒤, 연안부두를 떠나 모함인 전차상륙함(LST)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훈련병 585명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1진 316명이 예인정으로 출발했고, 남은 2진은 부두에 대기 중이었다. 동료들의 눈 앞에서, 모함 LST 바로 옆 50m 지점이었다.

■ 이튿날 첫 면회가 예정돼 있어 교육단 주변엔 전국에서 온 훈련병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해군 160기로 입대 예정인 장정들과 가족들도 적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해군 160기)에게 "이왕 고생할 거 (내 말대로) 진작 입대했으면 이제 훈련을 마쳤을 텐데"하고 말했고, 아들은 "저의 사정으로 늦춘 것이니 염려하지 마세요"라고 대답했다. 부자의 대화는 참사 소식을 접하기 직전이었다. 이후 아들이 제대하고 나서 20~30년이 지나도 아버지는 미안함을 버리지 못했다. 군인을 둔 가족의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당시는 유신독재 시절이라 보도가 극도로 제한 됐을 터지만 지금은 반대다.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서 해군 초계함이 침몰해 장병 40여명이 실종됐다. 무심한 일부 TV의 과잉 경쟁이 유감이다. 한 TV는 사고의 원인과 과정을 추론한다면서 포격 당한 함정의 선실과 기관실에서 장병들이 탈출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화 장면을 배경 화면으로 한동안 내보냈다. 또 실종된 장병들이 초계함 후미 쪽에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앞쪽에 있던 장교들은 모두 무사했다"는 식으로 말해, 마치 장교들이 부하들을 팽개치고 도망친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 다른 TV는 실종 사병 가족들이 해당 부대를 방문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과정을 보도하면서 가족들이 부대원들을 폭행하는 듯한 행동이나, 부대원들이 질서유지를 위해 가족들에게 총을 겨누는 모습을 마구 내보냈다. 토요일 저녁 정규방송 시간이고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사건이다. 아직 초계함의 폭발과 침몰 원인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물론 군에 가족이 있거나 앞으로 보내야 할 국민의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처사들이다. 국민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자체 검열'이 있어야 한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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