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통틀어 비할 데 없이 탁월한 실존의 백과사전이다. 소설의 형식을 풍부하게 하고 소설만이 발견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의 영역을 엄청나게 확장했다."
체코 출신의 세계적 작가 밀란 쿤데라가 로베르트 무질(1880~1942)의 장편소설 <특성 없는 남자> (이응과리을 발행)에 바친 찬사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독일 작가인 무질이 1920년께부터 집필에 착수, 1930년 제1권, 2년 후 제2권을 출간했으나 끝내 미완의 유작으로 남은 이 소설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1922),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913~1927)와 비견되는, 20세기 전반 유럽 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잃어버린> 율리시즈> 특성>
난해한 내용, 방대한 분량 탓에 국내에선 오랫동안 제목으로만 회자됐던 이 소설이 한국어로 처음 번역됐다. 번역자는 독일에서 무질 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고원(59) 서울대 독문과 교수. 고 교수는 무질 생전에 출간된 제1, 2권을 내년까지 모두 세 권으로 번역하기로 하고 이번에 첫 번째 책을 냈다. 분량은 총 1,700여 쪽에 이른다.
고 교수는 "<특성 없는 남자> 가 처음 세상에 나온 지 80년 만에 한국어판이 나온 셈"이라며 "출간된 분량보다 오히려 많은 미출간 유고는 번역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특성>
소설은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1년 동안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식인 청년 울리히가 밟은 행적을 따라간다. 황제 즉위 7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며 빈의 사교계에서 활동하던 그는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귀향했다가 여동생 아가테에게 근친애를 느낀다.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이 소설은 울리히가 기존의 도덕에서 벗어나 진정 '올바른 삶'을 모색하는 과정이 뼈대를 이룬다. 고 교수는 "독자 스스로 울리히가 되어 그가 새로운 예술적, 언어적 체험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동참한다면 어떤 작품보다도 재미있게 읽힐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도 번역된 소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1906)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무질은 1930년대 나치 독일의 박해로 스위스로 망명, 가난과 싸우며 창작에 매진하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고 교수는 "미완성의 폐허로 남아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전망을 열어준 <특성 없는 남자> 의 운명은 작가의 불우한 생애를 닮았다"고 말했다. 특성> 생도>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