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실즈 지음ㆍ김명남 옮김/문학동네 발행ㆍ332쪽ㆍ1만3,000원
성체가 된 지 한참 된 나방들은 젊은 나방들의 움직임을 흉내내곤 한다. 포식자들의 시선을 젊은 나방들로부터 자신에게 옮겨오기 위해서다. 자신들이 희생함으로써 종 전체의 이득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어떨까. 인간 몸의 모든 자원 역시 번식이 목적이며, 임무를 수행한 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자연은 관심이 없다. 문화ㆍ사회학적으로도 인간은 이런 몸의 질서에 따르게 돼있다. 예컨대 사춘기에 이른 딸과 아내가 갈등을 빚어 말다툼을 하면 가족들은 무의식적으로 딸 편을 든다. 가족이 생산력이 높은 여성을 보호하도록 유전자들이 몰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실즈(54)는 에세이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에서 유년기와 아동기, 청소년기, 중년기, 노년기에 이르는 인간 몸의 변화를 생물학, 유전학, 생리학 등 풍부한 지식을 동원해 설명한다. 지은이의 메시지를 함축하자면 이것이다. "사람은 몸이 있다. 몸은 모두 죽는다. 당신의 몸도 그런 몸이다." 우리는>
애걔? 이거 너무 빤한 메시지 아니야, 라며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년기에 극심한 요통에 시달리며 늘 죽음을 생각한다는 지은이가 내밀한 가족사를 끄집어내 삶과 죽음의 오의(奧義)를 사색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아흔이 넘어서까지 왕성한 성생활을 즐기는 자신의 아버지, 매사에 에너지가 철철 넘쳐나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10대 딸을 바라보며, 그는 인생이란 죽음으로 향한 도정이라는 진실을 회피하지 말라고 전한다.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겠다고 성형을 위해 지갑 열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들, 혹은 영원불사를 꿈꾸며 자신의 몸을 냉동장비에 맡기는 이들의 노력은 그가 보기에 별 가치가 없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대책없는 허무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다. 역설적이지만 죽음 때문에 삶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삶을 가꾸기 위해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아내라고 그는 말한다.
사춘기 소년 소녀의 육체적ㆍ정신적 발달 격차를 설명하면서 '17세에는 불행한 연애를 하기 마련이다'라는 프랑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을 인용하고, 육체적ㆍ정신적 쇠퇴가 시작되는 30대를 비유하면서 '30세가 넘은 뒤 죽는 날까지 대여섯 번쯤 예외가 있을 뿐 거의 매일 아침에 눈 뜰때마다 슬프다'라는 에머슨의 말을 끌어들이는 등 적재적소에 부려놓은 촌철살인의 문학ㆍ예술적 텍스트들이 근사하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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