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그 날(지난해 11월13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에게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두면 되겠느냐"는 발언을 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무엇보다 두 침묵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안 대표는 처음"봉은사 주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압력을 넣느냐"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는 증언들이 계속 나오자, 갑자기 입을 닫았다. 그와 달리 자승 스님은 처음부터 침묵했다. 누구보다 그 날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당사자이면서.
▦안 대표의 발언이 봉은사의 직영사찰 전환에 실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절차나 과정, 결과에 대한 중앙종회의원들과 원로회의 의장단의 단호한 태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들은 직영 전환은 조계사 스스로 판단해, 적법하게 결정했다고 잘랐다. 오히려 정치외압설이야말로 종단 내부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며, 조계종의 자주성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마디로 "조계종을 뭘로 보고 그러느냐"는 것이다. 정권 초기부터 끝없이 제기된 종교편향으로 인한 정부와 불교계와 껄끄러운 관계와 감정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안 대표는'무죄'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 결과에 의해 책임 유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안 대표가 문제의 발언을 했느냐, 안 했느냐와 조계종의 봉은사 직영 전환 결정은 별개다. 어떤 이유로든 정치인이 종교에 간섭이나 영향력을 발휘하려 했다면 정교분리원칙을 어긴 것이다. 따라서 그의 침묵은 두 가지 점에서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하나는 비겁이고. 또 하나는 무책임이다. 처음 그는 무작정 잡아떼다가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슬그머니 숨었다. 끝까지 당당하게 맞서거나, 국민과 불교계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과해야 옳다.
▦이번 발언을 폭로한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과 일부 불교단체들은 자승 스님보고도 입을 열라고 요구한다. 그것만이 사태의 확산을 막고,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요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묵묵부답이다. 25일 불교시민단체와 승가단체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는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종교지도자가 어떻게 다 그 내용을 밝히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의 침묵은 비겁도, 눈치보기도, 무책임도, 사사로운 신의도 아닐 것이다. 국민과 종교 내부갈등을 염려하는, 말(진실)을 대신한 침묵일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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