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에 회계대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부터 '감사보고서' 불량 판정을 받아 퇴출 위기에 몰린 상장업체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2009회계연도 감사보고서를 공시한 코스닥 상장기업인 오페스와 쏠라엔텍, 에이스일렉트로닉스, 인젠 등 4개사가 공인회계사로부터 '의견 거절' 판정을 받는 등 12월 결산법인 가운데 공인회계사 감사를 통과하지 못해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기업이 총 26개사(유가증권시장 6개ㆍ코스닥 20개)에 달하고 있다.
또 제출시한(23일)이 지났는데도 뚜렷한 이유 없이 감사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장법인도 35개사(유가증권시장 9개ㆍ코스닥 26개)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3월까지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35개사 중 29개사가 기한 내 감사보고서 공시를 못했던 것에 비춰볼 때, 미제출 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감사 의견거절' 기업이 될 전망이다.
공인회계사는 ▦자본잠식으로 기업 존립 전망이 불투명하거나 ▦회계시스템이 불투명해 재무제표가 기업실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의견 거절'을 하게 되는데, 상장기업이 이런 판정을 받으면 주식 매매가 즉시 정지되고, 이후 7영업일 안에 이의신청을 해서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상장이 폐지된다.
거래소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재무제표가 기업의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증시에서 퇴출되는 기업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감사의견 거절'로 상장 폐지된 업체가 지난해(23개)의 두 배에 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런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데, 대표사례는 네오세미테크이다. 태양광 및 발광다이오드(LED) 제조업체인 이 기업은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 30위권(시가총액 4,000억원대)의 대형기업인데 최근 공인회계사의 '의견 거절'로 퇴출 위기에 몰렸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상장업체가 불투명한 회계 때문에 퇴출 위기에 몰린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며 "최근 회계대란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부실 감사보고서에 따른 퇴출 도미노 우려가 커진 이유는 뭘까. 증권업계에서는 지난해 경기침체의 여파가 체질이 허약한 코스닥 기업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또 내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앞두고 감독당국이 회계법인에 대한 감리를 강화하면서 회계법인들이 상장법인에 대한 감사를 이전보다 엄격하게 하는 것도 또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김동준 신한금융투자 투자분석부장은 "일부 기업은 횡령ㆍ배임 등 경영진의 부도덕한 행위가 문제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IFRS 도입에 대비해 회계법인들이 상장기업의 회계 시스템 및 실적에 대한 '검증작업'을 훨씬 꼼꼼하게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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