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노조가 사측과 단체협상 결렬로 파업 여부를 묻는 찬반 투표를 이번 주에 시작했다. 가공할 만한 용어가 오가는 살벌한 방송판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사건이다. SBS가 파업에 들어간다니 임금협상 탓이라 가벼이 여기고 배부른 투정이라고 넘겨버리는 쪽도 있다. 민영 지상파 방송에 대한 사회적 관심, 토론이 지나치게 소홀하다.
미국이 9ㆍ11사건을 맞았을 때 폭스 효과(Fox Effect)란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방송 저널리즘이 황폐화된 일을 두고 한 말이었다. 연일 폭스 텔레비전에서 뉴스를 통해 미국 국수주의를 외치며 미국민을 미국 지상주의로 몰고 가던 행태를 비꼰 말이었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폭스의 엉터리 방송 저널리즘은 먹혔고, 폭스 텔레비전은 일약 방송 저널리즘의 총아로 등장하게 된다.
방송 저널리즘의 기본을 들어 폭스 텔레비전을 비판하던 타 지상파 상업방송은 딜레마에 빠졌다. 폭스 텔레비전에 대한 비판이 효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청률 경쟁을 하던 타 상업방송은 폭스의 뉴스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판하면서도 따라가야 할 만큼 폭스 텔레비전이 미국 방송 저널리즘의 생태계를 교란시켰던 셈이다. 폭스 효과는 그처럼 한 방송이 타 방송, 방송 생태계 전체에 미친 나쁜 영향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다시 목동의 SBS 파업 투표 소식으로 돌아와 보자. SBS는 지난번 재허가 심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개선책으로 더 많은 사회 공헌, 소유와 경영 분리 체계를 사회적으로 약속했다. 지상파 민영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온 사회에 알린 일이었다. 소유 구조와 관계없이 지상파 방송이 지녀야 할 공공성을 사회가 공부한 사건이기도 했다. SBS 노조는 그 때 그 약속, 그 정신, 그 학습의 시간을 되돌아보자며 나섰다.
폭스 효과처럼 SBS 효과가 한국에서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공공성은 공영방송에만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다. 오랜 지상파 방송 역사를 가진 영국에서는 민영 지상파 방송도 공적 책무 방송으로 규정한다. 국민의 자산인 주파수를 사용하는 한 그 책무로부터 자유스럽지 않다는 논리다. SBS 효과로 방송 생태계를 어지럽히거나 시청률 경쟁으로 몰고 가거나 공익 프로그램의 실종이라는 결과를 낳게 될 경우 SBS는 또 다른 나쁜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다.
‘기쁨 주고 사랑 받는’ 방송이 되기 위해선 사회적 책무를 인식하고 있는 방송인이 먼저 만족할 수 있는 방송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지주회사 설립 이후 지속적으로 SBS 구성원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내부 종사자의 지적이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함은 물론이고, 공익적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편성하고, 인사에 대한 독립성이 유지돼야 함을 노조는 강조하고 있다. 이번 파업 투표는 임금의 높고 낮음에 대한 불평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아닌가를 따지는 자긍심의 다툼이다.
방송 담론이 여의도에만 쏠려 있다. SBS에 대한 논의는 동계 올림픽과 관련해 간간이 들릴 뿐이다. 민영 방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과소한 탓이다. 민영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되는 일은 과잉이되 그것을 따지는 담론은 과소하다. 방송 공공성을 수호하고, 그럼으로써 방송 생태계도 긍정적으로 견지하려는 SBS 노조의 결정이 그래서 공익적으로 다가온다. 최근 미국에선 폭스 뉴스의 선정성을 놓고 다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한다. 나쁜 방송은 언제든 공공의 적이 될 수 있음을 전해주는 뉴스다. SBS가 그런 시험에 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파업이 성사되기 전에라도 SBS 구성원이 공공성을 외치는 소리를 사측이 존중하는 결정을 내려주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온 사회의 SBS 사태에 대한 관심도 요청해본다.
원용진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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