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기업 크라이슬러의 회계 감사 데이비드 바제타(54)씨는 2004년 독일 모기업인 다임러크라이슬러(현재 다임러AG)의 임원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로 유명한 세계적인 자동차기업 다임러가 정기적으로 외국 정부에 뇌물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바제타는 이에 대해 반발했다가 해고를 당하자 소송을 제기했고, 그 사건은 다임러의 ‘뇌물스캔들’을 세상에 알리는 시작이었다.
6년의 조사 끝에 미 법무부가 23일 다임러를 결국 뇌물제공 혐의로 기소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이 보도한 공소장에 따르면 다임러는 북한을 포함해 세계 22개국 공무원들에게 1998~2008년 10년간 수천만 달러 이상의 뇌물을 제공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각국에서 자동차 관련 계약 건을 따내는데 유리하게 해달라는 명목이었다.
유령회사를 세워 그 명의로 비밀계좌를 운영했는데, 뇌물에 동원된 계좌가 200개가 넘었다. 뇌물을 받은 국가는 중국, 러시아, 이집트, 그리스, 나이지리아, 이라크 등이었으며, 프리프레스닷컴에 따르면 북한도 포함됐다.
뇌물 수수자에 미국 공무원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FCPA)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어떤 회사라도 해외 계약을 위해 뇌물제공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기소가 가능했다. 한국이 포함돼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한국 법무부 관계자는 “미 정부로부터 이 뇌물스캔들에 한국 정부가 끼어있다는 통보를 받은 바 없다”고 말해, 22개국에 포함이 안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임러의 뇌물제공 방식은 여느 ‘악덕기업’못지 않았다. 다임러는 미국 등에 유령회사를 세운 뒤, 유령회사 명의로 된 200개 이상의 은행비밀계좌와 펀드를 조세피난처에서 운용했으며, 이 돈은 뇌물 자금이 됐다. 다임러는 이 돈을 ‘수수료’나‘특별 할인비’로 회계 처리했고, 유령회사와 허위로 컨설팅계약을 체결한 것처럼 위장해 비밀계좌에 돈을 입금하기도 했다. 미국의 유령회사를 통해서 운용된 자금만 세전 집계로 5,000만 달러(약 570억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임러는 이날 약식 기소된 것에 불과하며 미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총 1억8,500만달러(약 2,100억원)의 소송 화해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정식기소를 면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미국은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이 있어 혐의를 인정하고 협조하면 검사와 협상을 통해 벌금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최근 독일의 지멘스도 13억 달러의 벌금을 내고 미국과 독일에서 뇌물제공혐의 조사를 종결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아울러 다임러의 ‘뇌물스캔들’에 연루된 국가들이 미국의 수사자료를 넘겨받아 자체조사를 벌이지 않는 한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을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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