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목소리가 또렷했다. 경복궁 경내를 거닐며 가이드의 설명을 경청하는 자세와 "(인터뷰를 위해 온 기자에게) 안타깝지만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이 없다"며 조심스럽게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에선 안 의사 후예의 기품이 느껴졌다.
안중근 의사의 친손녀 안연호(74)씨를 만난 건 24일 낮 경복궁 경내. 안 의사 순국 100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세 번째 방한이었다. 안씨는 안 의사의 둘째 아들인 안준생씨의 1남2녀 중 둘째로, 현재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다. 며칠째 이어진 강행군 탓에 "몸이 좋지 않다"고 했지만 조선의 정궐 경복궁의 기운을 받았는지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브로드마인디드(Broad-minded) 맨이시지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태어나 12세부터 친척들과 함께 미국에서 살아 온 안씨는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 안 의사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아버지로부터도 많은 얘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할아버지는 조국뿐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의 평화를 염려하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야기가 아버지로 흘렀다. 준생씨는 중국을 떠돌며 쉽지 않은 삶을 이어가다 1952년 부산에서 생을 마쳤다. "4개 국어를 하셨어요. 한국어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하지만 일본어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안씨는 아버지가 일부러 일본어를 멀리했는지는 확실치 않다면서도 "안 맨(An Menㆍ안씨 집안 남자들)"들은 모두 일본어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안 의사의 유해 문제는 안씨에게도 적지 않은 숙제다. 안씨는 "일본이 할아버지가 묻힌 곳을 모를 리가 없다"며 "지금이라도 유해를 고국에 모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안씨는 안 의사 의거 100년을 맞아 두 번째로 방한했던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유전자(DNA) 샘플 추출을 위해 채혈을 했다. 언젠가 안 의사의 유해가 세상에 나올 때를 위한 것이었다.
안씨는 안 의사 순국 100년을 맞아 나라 안팎에서 고조되고 있는 추모 분위기에 대해 "할아버지의 뜻을 기억하고 기념해 줘 진실로 감사하다"고 두 손을 모았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우리들이고, 미안한 쪽 역시 국민들이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사진=김주영기자 wi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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