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는 던져졌다. 시저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마침내 미국의 의료개혁 법안이 상하 양원을 모두 통과했다. 노예 해방 법안의 통과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지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남의 나라 일을 주시하는 까닭은 이 개혁 법안이 미국 사회에 미칠 파장과 의미가 그 어떤 법안보다 남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 제도가 없다. 물론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돈 있는 사람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중산층 이하 사람들은 직장이 끊기면 건강보험도 끊긴다. 병이 나면 집을 팔아 의료비를 대다 길거리에 나 앉기도 한다.
시애틀에 사는 한 여자가'대머리라도 좋으니 캐나다 남편을 구한다'는 광고를 낸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자궁암에 걸린 작가 출신의 이 여성은 국가가 의료보장을 해 주는 캐나다 국적의 남편을 얻어서라도 자신의 삶을 파멸시킬 의료비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 어이없는 광고를 낸 것이다. 의료 개혁 법안은 역대 민주당 대통령이 수 없이 공약한 사항이지만, 공룡 같은 건강보험 회사와 힘센 이익집단의 입김 때문에 번번히 좌절됐다.
이 법안 통과의 과정을 지켜 보면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오바마의 비전과 신념의 리더십이다. 오바마의 어머니는 난소암으로 죽었다. 죽을 때까지 의료비를 걱정한 어머니를 지켜 보아야 했다고 한다.
의료보장 개혁은 오바마의 연임 가능성을 불투명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단임 대통령이 되더라도 역사적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를 줄곧 비판한 폭스 TV에 나가서 사회자와 맞장 토론을 하고, 연일 타운 홀 미팅에 나가 의원들과 국민을 설득했다. 법안 통과 직전에는 92명의 의원들에게 전화를 하고 낙태를 반대하는 민주당 의원들과는 협상을 벌였다. 다른 대통령 대부분이 재선이 된 후에야 슬금슬금하려 했던 개혁을 집권한지 1년 만에, 비전과 설득의 리더십으로 극복해 낸 것이다.
미국의 건강보험 개혁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은 개혁이 제때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 미국에 갔을 때, 공공 TV에서 민주당이 드러내 놓고'현재 건강보험 제도는 민간 건강보험 회사와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안'이라고 광고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누가 보아도 의료 개혁 법안은 국민에게 이득이 된다. 물론 한해 9억 달러의 재정 적자 부담은 막대한 것이지만, 미국이 이라크 전을 치른 값과 비슷하다. 이 사실을 민주당과 오바마는 끊임없이 알리고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개혁 과정은 과연 어떤가? 과거 우리의 개혁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원인 역시'설득'이 관건이었던 것 같다. 설득의 주체가 되어야 할 대통령은'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감정적인 토로를 했고, 결국 총체적 난국이 닥치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영 건강보험 도입을 정부가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영리법인은 돈 안 되는'보험진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조차 건강보험에 관한 한, 한국이 부럽다고 한 제도를 왜 고치려고 할까?
누가 나서서 보수파를 설득하고 국민들을 설득할 것인가? 난관은 어디에나 있다. 보수파와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의 공세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거세다. 설득과 비전의 리더십을 펼칠 한국의 오바마를 소망해 본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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