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이 옳다면 남들의 인정은 불필요하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 하나인 '푸앵카레 추측'을 풀어낸 러시아의 수학천재 그리고리 페렐만(44)이 이번엔 100만달러의 상금을 거부했다. 2006년 수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 메달'을 뿌리친 이 은둔의 천재는 시상식장에서의 수상 소감 대신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파트 문밖에 대고 "나는 돈을 원치 않는다"고 외쳤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23일 "페렐만이 푸앵카레 추측을 푼 공로로 미국 클레이수학연구소가 수여하는 밀레니엄상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밀레니엄상은 2000년 클레이수학연구소가 세계 7대 수학난제를 푸는 사람을 위해 100만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제정한 상으로, 페렐만은 18일 그 첫 수상자로 선정, 수락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그는 집을 찾아온 기자를 향해 대문도 열지 않은 채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외침으로써 수상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페렐만은 앞서 2006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수학연합의 필즈 메달 시상식에 불참했을 때도 "나는 돈과 명예에 관심이 없다. 동물원의 동물처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1980년대 레닌그라드 주립대학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페렐만은 고교 시절 이미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신동으로, 구 소련의 과학 아카데미인 스테클로프 수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연구원이던 2003년 푸앵카레 추측을 증명한 논문을 인터넷에 게재해 국제적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복수의 연구팀이 검증한 결과 그 증명이 참으로 밝혀지면서 세계적인 천재 수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푸앵카레 추측은 "3차원에서 두 물체가 특정성질을 공유하면 두 물체는 동일한 것"이라는 이론으로,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1904년 제기한 이래 100년간 수많은 수학자들이 매달려 씨름한 난제 중의 난제였다.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남부의 지저분하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페렐만은 2003년 스테클로프 연구소에서 해고된 후 현재까지 무직으로 지내며, 수학 연구도 완전히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수학은 논의하기에 고통스러운 주제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됐다"는 게 친구들의 전언이지만, 자신의 업적을 폄하하려는 수학계 일부의 알력에 크게 상처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100만달러의 상금을 내친 통 큰 인물이지만, 페렐만은 현재 재정적으로도 상당히 곤궁한 상태인 듯하다. 페렐만의 이웃인 베라 페트로브나는 "그의 집에 한번 갔다가 경악했다"며 "살림이라곤 테이블 하나와 의자 하나, 알코올중독자였던 전 집주인이 남기고 간 더러운 매트리스가 전부였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아파트 단지에서 바퀴벌레를 없애려고 노력 중이지만, 모두 그의 집으로 숨어들어 여의치 않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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