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타워크레인, 불 꺼진 아파트, 한적해진 도로.
지난해 11월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최대 국영기업 두바이월드가 채무상환유예(모라토리엄)을 선언한지 4개월. 두바이는 더 이상 1년전의 그 모습이 아니다.
자본과 창조성이 만들어낸 '사막의 기적'이란 찬사는 모래바람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며, 바닥을 친 두바이 경제도 되살아나기 버겁기만 해 보인다. 하루 아침에 물거품처럼 꺼져버린 자존심을 다시 새우기 위해 손발 걷어붙인 정부의 노력은 절박하다 못해 안타깝기까지 하지만, 떠나는 투자자들의 발길을 다시 잡아 재기의 날개를 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반토막 경제
두바이 도심 팜주메이라 일대 주요 주거밀집단지인 비치레지던스 지역. 두바이의 밤은 더 이상 불야성이 아니다. 50층 안팎의 초고층 아파트가 거대한 빌딩숲을 형성한 웅장한 겉모습과는 달리, 듬성듬성 새어 나오는 불빛은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울 정도다. 언뜻 봐도 열 집 중 예닐곱 집은 불 꺼진 빈집.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며 생긴 빈자리다. 모하메드 와드하 아렌코 부동산 중개법인 실장은 "초고층 아파트 단지의 경우 절반 가량은 빈 집"이라며 "일부 상업용 빌딩의 경우에는 공실률이 절반을 넘어 70~80%까지 달하는 곳도 적지 않으며, 신축중인 빌딩 가운데도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된 곳이 꽤 된다"고 말했다.
아파트 임대료도 두바이 경기가 한창일 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지 부동산중개법인 FL리얼티의 나디야 타밈씨는 "침실 3개짜리 100㎡ 수준의 아파트를 구하려면 한창때는 연 26만 디르함(약 8,000만원) 가량은 줘야 가능했지만 지금은 13만 디르함(4,000만원) 정도면 충분히 구하고도 남는다"며 "이마저도 매물이 넘쳐나 집주인들이 임차인을 구하기 위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 투자자들의 연쇄 탈출은 호텔과 도로 사정 등에서도 묻어난다. 현지 한인여행사 메이플라워 김영철 부장은 "몇 년 전만 하더라도 440개 두바이 호텔의 평균 객실 점유율은 80% 선을 넘어섰는데 지난해 말 이후로는 40%대에 머무르고 있다"며 "빈 객실이 넘치다 보니 최근엔 방값도 30~40%씩 할인해주고, 콧대 높던 호텔들이 여행사를 상대로 객실 영업을 해오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개발과 금융이 활황일 때에는 1㎞ 움직이는데 차로 1~2시간이 넘게 걸릴 정도로 도로가 차로 넘쳐나기도 했다"며 "지금 도로 소통이 크게 좋아진 것도 결국은 두바이 경제가 그만큼 나빠졌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꺾인 자존심
세계 최고층 마천루이자 두바이의 자존심인 '부르즈칼리파'는 외화내빈 두바이의 모습을 대변한다. 현지 관계자들은 빌딩 준공을 불과 몇 일을 앞두고 건물 이름이 '부르즈두바이'에서 '부르즈칼리파'로 갑작스레 바뀐 것을 두바이월드의 모라토리엄 탓으로 보고 있다. UAE 최대 토후국인 아부다비로부터 대규모 금융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두바이가 자존심을 버리고 아부다비 통치자이자 UAE 대통령인 셰이크 칼리파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
설계 초기부터 준공때까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온 부르즈칼리파가 올 초 준공식 이후 불과 며칠만에 승강기 고장 문제를 이유로 건물 운영이 중단된 것 역시 사막의 기적과 한 순간의 쇠퇴로 점철되는 두바이 경제 사정과 오버랩되는 분위기다.
계속되는 재기 노력
예상만큼 시장 회복이 더디자 두바이 정부도 외국인 투자와 경기 활성화를 촉진하기 위해 당근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두바이 정부는 지난 16일 그 동안 개인 소유가 금지됐던 상업ㆍ산업용지를 일반인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파격적 대책을 내놓았다. 침체된 경기를 되살리고 썰물처럼 빠져나간 외국인 직접 투자를 다시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두바이 증시가 반짝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바이의 장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일각에선 "지금의 위기국면만 벗어난다면 다시 유럽과 중동, 아시아의 부호들이 몰려와 옛 영화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일각에선 "단기적 토목경기로 만들어진 두바이 자체가 버블이었던 만큼 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두바이 중개법인 디야르프로퍼티 관계자는 "상업ㆍ산업용지에 대한 민간 소유가 허용될 경우 매매거래 증가와 부동산 개발 여건이 크게 좋아질만한 여건은 조성될 수 있지만 솔직히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두바이=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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