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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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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배교

입력
2010.03.2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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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약인 너는 여름의 초록을 불탄 자리로 바라본다

만약 불타는 숲 앞이었다면 여름이 흔들린다고 말했겠지

소년병은 투구를 안고 있었고 그건 두개골만큼이나 소중하고

저편이 이편처럼 푸르게 보일까봐 눈을 감는다

나는 벌레 먹은 잎의 가장 황홀한 부분이다

색약이라고 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다지 큰 불편이 없다죠. 하지만 자신이 색약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문제가 생길 겁니다. 눈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말이죠. 여름의 초록을 불탄 자리로 바라본다고 해서 이상할 건 하나도 없어요. 다만 그는 그 불탄 자리가 의심스러워 골똘히 그걸 바라볼 겁니다. 어쩌면 문제가 생기는 건 자기가 정상이라고 믿는 사람들일 겁니다. 자기 입장에서 보인 것을 곧이곧대로 믿을 때, 이따금 문제가 생기죠.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겠죠. 더 큰 문제는 아예 눈에 보이는 것들까지도 외면하면서 자기만이 진실을 알고 있다고 우길 때죠. 그럴 때 인간이 제일 흉악해지지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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