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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킥 작가 이영철 "세경·지훈 죽음 암시 결말 놓고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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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킥 작가 이영철 "세경·지훈 죽음 암시 결말 놓고 갈등"

입력
2010.03.2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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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20%를 넘나들며 거침없이 인기 가도를 달렸던 MBC 일일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지붕킥)이 지난 19일 종영했다. 마지막 회에서 세경(신세경)이 공항에 데려다 주는 지훈(최다니엘)에게 사랑을 고백한 직후 화면이 바뀌면서 공항 근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짧게 나갔다. 3년 후, 정음(황정음)은 "그때 세경씨를 바래다주지 않았더라면"이라고 안타까워한다. 두 사람의 죽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상상할 수 없었던 슬픈 결말에 네티즌들의 항의가 주말을 지나서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22일 지붕킥 작가 이영철(35)씨를 만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필명 '새우등'으로 더 잘 알려진 이씨는 지붕킥의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의 극본도 썼다.

이씨는 "최종회를 보면 일반적, 직관적으로 충분히 두 사람의 죽음을 연상할 수 있다"며 시청자들이 제기하는 사망설을 부인하진 않았다. 그는 '리얼리티 시트콤'을 이유로 들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는 말이다.

죽음을 암시하는 결말에 대해 제작진도 적잖은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작가들 가운데 몇 명은 "굳이 죽일 필요까지 있겠느냐"고 의견을 제시했고 몇 차례 회의를 했으나 연출자인 김병욱 PD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작가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슬픈 결말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김 PD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다만 세경과 지훈의 죽음을 극중에서 못박지 않은 이상,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가능성도 조금은 열려 있다는 게 이씨의 변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붕킥이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화두를 던지는 정도지 결론까지 제시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구직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정음이 옷가지를 내다 팔아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눈물짓던 모습, 한창 자랄 나이인 신애(서신애)가 주인집 딸 해리(진지희) 눈치를 보면서 우유를 훔쳐먹는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청년실업, 빈부격차 등 사회문제에 대해 화두를 던질 뿐이라는 말이다.

어찌 보면 무책임한 이야기일 수도 있을 터, 사회문제 제기와 두 주인공의 죽음은 차치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을 뿔뿔이 헤어지게 해야 했던 이유를 묻자 당초 기획했던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전작인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는 유미 가족들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려고 갈팡질팡했던 부분이 있었다"며 "이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지붕킥에서는 시작부터 결말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별이 예정된 결말이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유미(박민영)의 부모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는 정수(박정수)가 죽는 등 김 PD의 전작들에 공통적으로 슬픈 결말이 나오다 보니 '김 PD가 매너리즘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씨는 "어떤 제작자가 처음부터 등장인물을 죽일 생각으로 시트콤을 만들겠느냐"며 "작품마다 다른 상황이었고, 가장 현실적인 결말을 이야기하려 했던 것뿐"이라고 김 PD의 생각을 전했다.

이씨는 결말에 대한 논란으로 다소 지친 듯 보였지만 지붕킥의 인기에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시청자 게시판과 블로그 등 여러분들이 써주신 글이 호평이든 혹평이든 너무나 큰 힘이 됐다"면서 "지난 6개월 간 적극적으로 지붕킥을 즐겨주신 분들에게 지면을 빌어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다"고 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결말의 의미는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지붕킥)은 지난 6개월 간 숱한 화제를 뿌려왔지만, 지훈과 세경의 죽음을 암시하는 결말이 어느때보다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극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지켜본 시청자라면 이 결말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LP판' 에피소드와 '휴양지 가는 그림' 에피소드 등에 지훈과 세경이 엔딩을 장식할 것이라는 복선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지붕킥'이 담아낸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회구조적인 이야기, 다른 하나는 개인의 성장과 자각에 대한 이야기다. 이 두 가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지훈과 세경 라인이다.

김병욱 PD는 지난해 말 인터뷰에서 지붕킥을 "1980년대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사회적인 폭력성을 가리킨 말이다. 그것은 신분, 계급의 폭력이다. 지붕킥에서 지방대를 졸업한 정음이 현경에게 용서받지 못하는 현실, 최하층 계급인 가정부 세경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는 현실이 그것을 대변한다. 등장인물 중 가장 크게 계급적 간극을 보여주는 이들이 바로 지훈과 세경이다. 그들은 서로의 계급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사회에서 규정한 틀을 깨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세경이 지훈에게 마지막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가정부라는 계급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붕킥은 이런 사회적 속박을 깨고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개인적 성찰과 자각을 말했다. 떠나는 세경에게 지훈이 건넨 책 <데미안> . 헤르만 헤세의 이 소설에는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투쟁한다. 그 새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개인의 자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 한 연출자의 의도는 이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극에서 그 개인적 자각은 사랑에 대한 자각으로 형상화됐다.

해리가 신애의 손에 맨 노끈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칠판에는 소나기와 가랑비의 뜻풀이가 써 있었다. 지훈이 정음이 아닌 세경을 선택한 것은 소나기처럼 옷만 적시고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랑이 아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다가 가슴까지 적셔버린 진짜 사랑에 대해 절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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