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4월에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발생하여 7일간이나 사람들이 빛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삼국사기에 고구려 동명성왕 4년(기원전 34년) 일어난 것으로 기록돼 있는 기상현상이다. 양력으로는 5월로 봄철인 이 시기는 요즘도 황사와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7일 동안 태양을 볼 수 없었다고 하니 당시 서해 바다와 공기의 온도 차가 심해 나타나는 계절 안개가 극심했음을 말해준다"고 분석했다.
고문헌 속에서 잠자고 있던 한반도 역대 기상현상이 깨어난다. 기상청은 23일~28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기상역사자료전시회'를 열어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간 쌓여온 기상관측 관련 문헌과 문화재 총 27종 108점을 선보인다. 특히 삼국사기, 고려사, 1098년에 간행된 백과사전격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조선시대 관측일지인 풍운기(風雲記) 등 고문헌에 수록된 옛 기상현상은 오늘날에도 더듬어보고 비교해봐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
고구려 모본왕 1년(서기 49년)에는 '음력 3월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혀 나갔고 4월에는 서리가 내렸다'고 적었다. 양력 5월의 서리는 요즘에도 드문 냉해(冷害) 현상이지만 나무가 뽑히는 돌풍은 태풍이 부는 여름뿐 아니라 한반도에 1년 내 있는 현상이라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볼 수 없는 천재지변도 있다. '신라 혜공왕 15년(767년) 봄 음력 3월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하여 100여명이 사망하였다'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지진에 대한 계기관측이 시작된 1978년 이후 한반도에서 지진 사망자는 한 명도 없으며 1978년 홍성 지진 때 부상자 2명이 최다인명피해다.
삼국사기에만 특이 자연현상이 1,000여건 수록돼 있고 이 가운데 폭풍, 안개, 서리, 대설 등 특이기상은 276건에 달한다. 기상청 육명렬 기상청 예보정책과장은 "고문헌으로 볼 때 삼국시대도 현재와 기후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극단적 기상현상은 오히려 최근에 더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근대 기상역사를 뒤바꿀 중요자료도 선보인다. 근대기상관측은 1904년 처음 실시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물포, 원산, 부산 항구에서 연안의 기온, 기압, 바람 등에 대한 관측은 1883년부터 시작됐다. 이 밖에도 보물 561호 금영측우기(錦營測雨器)와 보물 842호 대구선화당측우대(大邱宣化堂測雨臺), 청계천의 물 높이를 재기 위해 설치됐던 수위측정기 수표(水標) 등 조선시대 관측장비도 전시된다.
김혜영 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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