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 김모(51)씨는 요즘 저녁 모임 스트레스가 확 줄었다. 일본의 인기 만화 <신의 물방울> 이 한때 CEO들 사이의 필독도서로 자리잡으면서, 술자리에서 와인에 대한 상식을 알지 못하면 자리에 끼기 어려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김씨는 “요즘은 와인대신 막걸리를 마시는 CEO들이 많아지면서 술자리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고 전했다. 신의>
#. 칠레에서 와인을 수입하는 A사 직원들은 최근 칠레 현지의 잦은 지진으로 전전긍긍이다. 회사가 수입하는 와인 중 일부가 지진피해를 심하게 입은 마울레밸리에서 수확한 제품인 탓이다. 마울레밸리는 지난 달 발생한 지진의 진앙지 남부에 위치한 칠레의 대표적인 포도밭. 회사 관계자는 “현재 들여오는 제품은 몇 달전 계약을 맺은 터라 큰 문제가 없지만, 향후 포도작황이 좋지 않을 경우 가격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와인이 사면초가의 위기에 놓였다. ‘지적인 술’ ‘건강한 술’로 대접받으며 국내에서 세력을 확장해가던 와인이 막걸리의 역풍에 휘청하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산 와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에 공급되면서 국내 와인계에 새로운 주력 제품으로 떠오르고 있는 칠레산 와인이 최근 지진여파로 인해 가격상승 움직임들이 감지되면서 업계에서는 자칫 소비감소로 이어지지 않을 까 우려하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해 국내에 수입된 와인은 2,571만병(750㎖ 기준)으로 2008년 3,200만병에 비해 20%이상 감소했다. 와인 수입량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07년(3,552만병)에 비하면 1,000만병 이상 와인을 적게 마신 셈이다.
반면 지난 해 우리나라 애주가들이 마신 막걸리는 4억8,900만병으로 2008년에 비해 1억3,700만병이 늘어났다. 막걸리 소비는 2005년 이후 매년 2~3%의 상승세를 유지하다가 지난 해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39.9%나 상승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막걸리와 와인은 위스키나 소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수가 낮은 저도주로 분류되는데, 지난 해에는 와인을 찾는 상당수 애주가가 막걸리로 발길을 돌리면서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껏 와인이 심장병에 좋다는 등 건강주로 알려져왔으나, 유산균과 누룩이 풍부한 막걸리도 건강주로 손색이 없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와인의 자리를 대체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달 발생한 칠레 대지진이 국내 와인소비를 더욱 움츠러들게 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마울레밸리, 센트라밸리, 마이토밸리 등 대표적인 와인산지가 지진피해를 직간접적으로 입은데다, 상당수 와이너리의 제조 탱크는 물론, 항만, 물동 등이 전반적으로 파손되면서 원활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산지에서는 포도값이 20%이상 상승하고 있어, 저가 포도주를 중심으로 가격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와인업계가 칠레산 와인 가격에 민감한 것은 국내 와인의 소비를 촉진시키는 데 칠레산 와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후 칠레산 와인을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대거 수입되기 시작했다. 실제 와인 수입이 절정기에 달한 2007년 프랑스산 와인 수입량은 969만병인데 비해, 칠레산 와인은 712만병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8년 칠레산 와인수입량은 812만병으로 프랑스산(729만병)을 처음으로 앞섰다. 지난 해 와인수입량이 전체적으로 감소하긴 했지만, 이 와중에도 칠레산 와인은 661만병을 수입, 프랑스산 와인(453만병)을 크게 앞섰다. 칠레산 와인의 강점은 수입량에서는 프랑스산을 앞지르면서도 수입가격으로 따지면 프랑스산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는 점.
업계 관계자는 “칠레산 와인값이 오르면 저렴한 맛에 찾는 소비자들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고, 결국 소비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며 “당분간 마진을 줄이거나 가격이 저렴한 제3국의 와인을 들여오는 방법으로 충격을 완화시켜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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