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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가상화, 실제 세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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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가상화, 실제 세상을 바꾸다

입력
2010.03.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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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충격이니 아바타 충격이니 하는 말이 나돈다. IT 선진국이라던 한국의 자존심이 무참해졌다는 반성도 들린다. 여전히 세계 최고의 IT 기기를 만들어내는 한국이, 소프트웨어와 창의적 개념의 경쟁에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급기야 정통부나 과기부를 없앤 결정을 재고할 필요까지 제기되는 상황이 되었다.

입체영화 <아바타> 가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3D 영상기술이 새로운 화두가 되었지만, 한국이 관련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오히려 큰 문제가 아니다. 이런 기술이 미래를 바꿀 주요 관심대상으로 분류되지도 않았던, 상상력의 부족이 정말 문제인 것이다.

하드웨어에만 몰입하다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깨닫는 데에는 시행착오와 각성의 시간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아이폰 충격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의 예를 들어보자. 애플사를 창업한 그는, 1980년대 초에 제록스 사의 연구소를 방문했다가, 문자로 된 명령어를 사용하던 당시의 컴퓨터가 아니라 그림(GUI)을 사용하는 컴퓨터 시제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에 자극 받아 매킨토시를 개발해서 큰 성공을 거두지만, 그의 경영 스타일에 반기를 든 이사회에 의해 85년 애플에서 쫓겨나게 된다.

좌절에 빠져 있던 잡스가 애플을 나오기 직전에 새로운 꿈을 갖는 사건이 생겼다.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폴 버그(Paul Berg) 교수를 만난 것이다. 생화학자인 버그 교수는 DNA를 추출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험해야 하는 어려움을 잡스에게 설명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수반되는 이러한 실험은, 상당 부분은 고등 수학을 사용한 모델링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컴퓨터로 가상적인 실험 즉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시간, 비용,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실험으로 예측하기 힘든 것까지 예측하게도 되는데, 잡스는 바로 이런 가능성으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본 것이다.

잡스는 애플을 나와서 넥스트 컴퓨터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가상실험이 가능한 하드웨어를 개발해 판매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불행하게도 넥스트 컴퓨터는 잘 팔리지 않았고, 그는 빈털터리가 될 처지가 되어서야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넥스트 컴퓨터의 진짜 본질인 운영체제를 파는 일에 집중한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전환은 이렇게 힘든 일인 것이다. 오늘날 맥의 운영체제인 OS X가 바로 이 넥스트 OS가 발전된 것이니, 그의 당시 노력은 결실을 맺은 것으로 볼 수 있겠다.

95년에 토이스토리라는 애니메이션이 성공하면서, 이 영화를 만든 픽사라는 회사가 주목 받았다. 이제는 초등학생도 컴퓨터 그래픽스라는 말을 생소해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컴퓨터의 힘과 생생한 애니메이션의 매력이 대중에게 각인되는 계기가 된 큰 사건이었다.

80년대에 루카스 감독이 소유했던 픽사는, 애플에서 퇴출된 뒤 절치부심하던 스티브 잡스가 86년에 사들이면서 개명한 회사이다. 잡스는 넥스트와 픽사라는 두 개의 회사를 자신의 새로운 미래로 삼은 셈인데, 픽사도 90년대 중반까지는 그래픽 하드웨어를 만들던 회사였다. 미래의 과학에서는 가상실험이 중요할 것임을 폴 버그 교수와의 대화에서 깨달은 잡스가, 컴퓨터 영상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픽사는 시행착오 끝에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회사로 거듭나 토이스토리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래픽 영상화에 관련된 많은 수학자를 연구원으로 고용하고 있기도 하다. 잡스는 디즈니사에 픽사를 팔면서 디즈니사의 최대 주주가 되었고, 소프트웨어의 힘을 실증했다.

박형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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