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ㆍ중 환율전쟁이 심상치 않다. 지난 14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환율 인하를 거절한 데 대해 미국은 격앙된 모습이다. 미 의원 130명은 15일 재무장관과 상무장관에 서한을 보내 중국의 환율 '조작'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24일부터는 하원에서 중국 환율 정책에 대한 청문회를 연다고 한다. 오바마 행정부도 물론 그냥 넘기지 않을 태세다.
다급해진 미국 대 버티는 중국
미국이 이처럼 중국에 대해 환율전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다. 실업률이 두 자릿수 가까이 치솟았지만 더 이상 내수 부양을 위한 통화·재정정책은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수출 확대와 수입 감축이 고용 확대 방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11월 중간선거에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의원들과 오바마 행정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미국의 압력에 대해 중국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미국에게 환율을 정치화하지 말 것과 자유무역을 훼손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이 세게 나오면 미국 국채를 파는 등 보복조치도 마다 않을 태세다.
따지고 보면 중국도 할 말이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달러화가 급등했을 때 중국은 위안화의 달러 환율을 그에 맞추어 올리지 않았다. 거기에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서 대규모로 팽창적인 통화ㆍ재정정책을 써서 금융위기가 대공황으로 가지 않도록 큰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국제수지 흑자는 크게 줄었다. 그런데 이제 금융위기가 수습되고 달러화 가치가 내려가자 미국이 환율을 내리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국은 97년 동아시아 위기 때 미국 달러가 강세를 보였지만 환율을 올리지 않고 넘어감으로써 위기 극복을 도왔다. 그러다가 위기가 해결되고 나니 미국이 환율 인하 압력을 넣었던 것이다. 결국 중국은 2004년부터 환율을 20% 정도 내렸다.
이렇게 보면 중국은 이번에도 압력이 부당하다고 하면서도 결국 환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 지금 중국이 꿈쩍도 않는 것은 수출 회복세가 굳어진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출 회복세가 분명해지면 점차 환율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런 점진적인 방식에 미국이 만족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미ㆍ중 환율전쟁은 한국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크게 올랐던 환율이 내리고 있는 터라 위안화 환율이 내리는 것이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곧 중국만 환율을 낮추어서는 효과가 별로 없다고 보고 한국에게도 추가로 환율을 내리라고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미ㆍ중간 환율 분쟁을 다자간 기구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도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미 의원들은 중국 환율 문제를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까지 가지 않더라도 올해 한국이 주최하게 되어 있는 G20에서 이 문제가 빠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바뀐 정치ㆍ경제질서 잘 읽어야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율을 둘러싸고 미ㆍ중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환율 문제로 갈등을 일으킨 것은 중국이 처음이 아니다. 일본 독일 한국 등 모두 미국으로부터 환율을 내리라는 압력을 받은 적이 있다. 미국 입장에서 이들 나라는 모두 '만만한' 상대로서 '팔을 비틀기'만 하면 됐다. 반면 중국은 분명히 다른 상대다. 그것은 물론 중국이 정치ㆍ군사적으로 다른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미ㆍ중 환율전쟁은 세계 정치ㆍ경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문제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에게 미ㆍ중 환율전쟁은 남의 이야기일 수 없는 것이다.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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