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용희 지음/멘토프레스 발행ㆍ246쪽ㆍ1만원
서울에 살고 있는 50대 공무원이 흑산도에서 보낸 18년 간의 유년시절을 돌아보며 쓴 에세이집이다. 40년 전 흑산도의 삶과 풍광, 그곳 아이들의 일상이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흑산도, 정확히는 거기서 30㎞ 떨어진 작은 섬 '태도'가 지은이가 나고 자란 섬이다. 현재 영등포교도소 교도관인 그는 지금도 매일 고향 바다를 그리워하며 향수병을 앓는다고 한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넣어 써내려 간 글 한 편 한 편마다 그런 마음이 가득 묻어있다.
거의 잊혀진, 정겨운 옛이야기들이다. 엄지발가락이 삐죽 나오는 '깜장고무신'을 신은 채 섬마을 골목을 누비고, 한겨울 동백꽃 꿀물을 따먹느라 온 산을 쏘다니고, 어른들이 마을 제사에 쓰려고 모셔둔 홍어를 서리하던 소년들 모습이 아스라하다. 설을 맞아 소를 잡는 광경이며, 봄 안개가 피어 오르는 바다 위로 수백마리씩 솟구쳐 오르던 날치떼와 상괭이(돌고래)들의 군무, 태풍 지난 뒤 파도에 떠내려온 수천마리 오징어떼를 주우러 배를 타고 무인도로 떠났다가 급류에 휘말려 죽을 뻔 했던 일 등 수많은 기억을 되살려 전한다. 백상아리(백상어)를 잡아와 잔치를 벌이고,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갔다가 빠져 죽은 넋을 달래는 초혼굿에 울고 웃던 섬마을 사람들의 웃음과 시름도 빼놓지 않는다. 더러 우습고, 혹은 애틋하고, 가끔 흥성스럽기도 한 그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집을 나가 떠돌다가 객사한 아버지, 해녀로 매일 물질을 해서 혼자 세 아이를 키운 어머니 등 가족 이야기, 대개 다정했지만 간혹 야멸찼던 이웃 이야기에는 다들 가난하고 못 살던 시절의 그늘이 짙다. 1968년 흑산도 간첩 침투사건 당시 소탕된 간첩들의 시신에 달라붙은 파리떼를 본 기억은 이렇게 썼다. "우리 같으면 몹시 가려워 얼굴을 움직였을 텐데, 시체는 꿈쩍도 않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잘 참는다고 생각했다.우리도 커서 어른이 되면 저렇게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을까."
다들 고향을 잃어버린 시대, 이 책은 옛추억에서 건져 올린 망향가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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