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ㆍ김경주 등 옮김/뿔 발행ㆍ440쪽ㆍ1만3,000원
멕시코 출신 남미문학의 거장 카를로스 푸엔테스(82ㆍ사진)의 2006년 발표작으로, 각기 다른 가족을 소재로 한 단편 16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제목과 달리 고통과 슬픔에 휩싸인 불행한 가족들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행복한 가족들은 모두 닮았지만, 불행한 가족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는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리나> 의 유명한 문구가 절로 떠오른다. 안나>
'많은 가족들 중 하나'는 갑작스레 퇴직 당한 아버지, 가수가 되고 싶었던 어머니, 다락방에서 리얼리티 쇼만 보고 사는 딸, 아버지를 내쫓은 회사에 들어간 아들로 이뤄진 가족의 이야기다.
평생 양심적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아버지는 저도 모르게 회사 차원의 비리에 연루돼 있었고, 그걸 빌미로 퇴직을 종용하는 상사에게 떠밀리듯 회사를 떠난다. 그는 아들에게 토로한다. "멕시코에선 일하지 않고 재산을 모으는 것이 유일한 도덕"이라고. 그런 아비를 비웃으며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아들 역시 부친과 같은 추락을 겪는다.
'매력 없는 사촌'에서 젊은 회계사는 가톨릭 교리에 따라 철저한 금욕을 실천하는 부인 때문에 욕구불만을 겪는다. 아내에게 세속적 즐거움을 일깨우려 친척들을 집에 초대했던 남편은 다들 무뚝뚝하고 못생긴 노처녀라고 여기는 사촌과 예기치 않은 사랑에 빠진다.
부인은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이혼은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버틴다. 한순간에 파탄나고 만 이 가족을 두고 작가는 묻는다. "가족은 지루해서 완벽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완벽해서 지루한 것이었을까?"
작가 푸엔테스는 군대 지휘관으로 게릴라 아들을 체포해야 하는 아버지, 딸을 죽인 살인자에게 편지를 쓰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대통령 아들 등 제각기 위기에 처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펼치면서, 그 안에 라틴아메리카의 문명과 현대사에서 유래한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상황들을 자연스럽게 녹인다.
예컨대 '살해 당한 가족의 합창'은 1981년 엘살바도르 정부군이 미국의 묵인 아래 벌인 학살극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이야기의 재미, 묵직한 문제의식을 두루 만끽할 수 있는 소설집이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