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3월에/ 세상을 떠나 나를 더 슬프게 한 점선/ 언젠가는 해인의 시와 점선의 그림을/ 곁들인 책을 내고 싶다 했는데/ 이제는 그 꿈을 이룰 수가 없네요."
이해인 수녀가 쓴 시 '김점선의 1주기에 부치는 편지'가 낭독되자 사람들은 조용히 눈물을 지었다. 순수하고 동화적인 그림, 남들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과 삶으로 '괴짜 화가'라 불렸던 서양화가 고 김점선(1946~2009). 그의 1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20일 서울 중구 예장동 '문학의 집 서울'에서 열렸다. '김점선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름 아래 소설가 박완서, 역사학자 이이화, 화가 이두식, 피아니스트 신수정, 탤런트 윤여정, 사진작가 김중만씨 등 그를 아꼈던 지인과 유족 50여명이 모인 자리였다.
추모 모임이었지만 늘 유쾌하고 밝았던 고인의 모습처럼 이날 행사장에는 눈물보다 웃음이 많았다. 스크린에서 2008년 투병 중이던 고인이 "내 걱정 말고 일들이나 열심히 하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번졌다. 신수정씨는 슈만의 '환상소곡집' 중 '왜'를 연주하기에 앞서 "점선이는 늘 음악회에 오면 밖에서 놀기만 했는데 이 연주를 좋아할지 모르겠다"며 웃었고, 이이화씨는 "점선이는 내 한문 제자이자 말동무였지만 고집이 세서 내 말을 제대로 들어준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가 발족할 때 그가 기금 마련을 위해 내어준 그림 10여 점이 큰 도움이 됐다"며 "작고 며칠 전 갑자기 우리 집에 찾아왔는데 마침 내가 집을 비워 만나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박완서씨는 단상에 오르기를 사양했다. 이유를 묻자 "한참 어린 사람이 그렇게 앞서 간 게 얄밉기도 하고 내가 오래 살아남은 게 슬프기도 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산을 타고 2시간 넘게 걸어 나를 찾아오곤 했어요. 아마 말이 고파서 그랬던 것 같아요. 모두가 체면을 차리느라 위선을 떠는 세상에서 김점선은 정말 위선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하는 모습, 그게 제일 그립습니다."
캄보디아에 '김점선 미술학교' 건립을 준비 중인 김중만씨는 "아름다운 곳에 아이들을 위한 예쁜 학교가 있으면 누나가 기뻐할 것 같다"고 했고, 이두식씨는 "용감하고 분방하게 창작 활동을 하던 사람인데 아직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이날 "청와대 관저에 걸린 김점선 화백의 작품들을 매일 보며 마음이 환해지는 걸 느낀다"는 추모 편지를 보내왔다. 고인은 이 대통령이 2007년 낸 책 <어머니> 에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
이날 모임을 주도한 시인 권영태씨는 "앞으로 미술관 건립, 음악회 개최 등 김점선의 이름을 단 여러 사업을 펼쳐 나가려 한다"고 밝혔다.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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