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적을 부여 받은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나라의 번영과 발전에 기여할 것을 선서합니다."
한국말로 유창하게 귀화 선서를 하는 동안 에티오피아인 아브라함(가명ㆍ38)의 목소리와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19일 경기도 과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석동현 본부장으로부터 귀화 증서를 받은 아브라함이 이날부터 '난민'신분을 벗고 대한민국 국민이 된 순간이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우리나라가 난민협약에 가입한 1992년 이후 난민 인정자 중 첫 국적 취득자가 됐다.
내내 긴장하던 아브라함은 귀화 증서 수여식이 끝난 뒤에야 표정이 풀렸다. 긴장과 설렘으로 새벽까지 잠이 들지 않았다는 아브라함은 짙은 회색 양복과 선홍색의 넥타이를 가리키며 "수여식에 오려고 한 벌 구입했다"고 환하게 웃었다.
아브라함이 낯선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지난 2001년 8월 21일. 당시 멜러스 제나위 총리가 이끄는 군부통치하의 에티오피아는 거리에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함성이 가득했고 유혈 충돌도 빈번했다. 아디스아바바 국립대 재학 중 반정부단체인 민주당원으로 활동하던 아브라함은 시위주도 혐의로 수배가 내려져 고국을 떠나야 했다.
케냐로 건너간 뒤 이른 시일 안에 도피할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어학연수 비자가 가장 빨리 나온 한국은 그에게 운명의 땅이 됐다. 이듬해 정치적 박해를 이유로 난민신청을 했고 2005년 9월 난민지위를 인정받은 지 4년여 만에 마침내 '검붉은 한국인'이 된 것이다.
눈물을 머금고 등질 수 밖에 없었던 에티오피아는 쓰리고 아픈 생채기를 그에게 남겼다. 전 정권에서 장군을 지내고 지방관리로 있던 그의 아버지는 많은 재산을 정부로부터 몰수당하고 갖은 핍박에 시달리다 결국 1992년 세상을 떠났다. 그 탓인지 이듬해 5월 어머니마저 부친의 곁으로 가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그는 "좋지 않은 기억만 생각나 에티오피아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거기는 그리운 형제자매가 있고 정든 친구들이 있는 곳. 아브라함은 "지금도 압제하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며 고개를 떨구기도 했지만 금세 " 자유와 민주의 나라 국민으로 살게 돼 행복하다"고 말했다.
국적 취득 후 제일 먼저 혼인신고부터 할 작정이다. 국내 신학대학 강사로 있는 에티오피아인 A(30)씨와의 사이에 5살인 딸을 두고 있지만 난민 신분으로 혼인신고를 못해 그는 늘 미안했다.
'도신조'라는 한국인 이름도 얻었다. 자신을 친자식처럼 보살펴 준 이성수 목사가 고심 끝에'믿음의 조상'이란 의미를 담아 지어줬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에티오피아간 교역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한국사람 도신조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그의 포부다.
한편 법무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난민 인정자는 177명이며 귀화를 신청한 이는 아브라함을 포함해 6명이다.
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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