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살던 내가 서울에 와서 '세상에 별난 기념일도 다 있네?' 하고 놀랐던 날이 3월 14일 화이트데이다.
총각이 처녀에게 진실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 물론 평양에도 있다. 평양 처녀들은 총각들의 구애를 쉽게 받아들이는 편인데 여기에는 나름대로 기막힌 사연이 있다. 우선 남녀비율을 반반으로 봐도 북한에서는 인민군대에 10~13년간 근무하고 제대한다. 절반 이상이 탄광이나 광산, 농촌 같은 험하고 힘든 일터로 집단배치 되기 일쑤이고 적지 않은 청년군인들이 군사훈련과 대형건축물건설 도중 죽거나 부상을 하고 온다. 그렇게 귀한 총각들에게서 혁명적 청혼을 받았는데 처녀귀신이 되려고 환장을 하지 않은 이상 어지간하면 오케이다.
그러니 북한에서는 당연히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보는 청춘 남녀들의 오래도록 하는 사랑고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제는 서울에서 추억으로 보는 평양의 화이트데이지만 너무도 어렵고 힘든 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안타깝다.
서울에서 화이트데이 날에 남자가 여자에게 하얀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사는 서울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껴본다.
탈북작가 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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