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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어린 죽순 끼워 빙글빙글… 음~ 봄이 익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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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어린 죽순 끼워 빙글빙글… 음~ 봄이 익어가요

입력
2010.03.1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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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긴 온 건가. 한기(寒氣)는 여전하다. 날이 쉬 안 풀리는 탓인지 마음도 덩달아 겨울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춥고 힘겨운 시간을 무사히 지나왔지만 자연도 사람도 아직 새 계절을 맞을 채비를 다하지 못했나 보다.

누군가 필요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작은 술잔 맞부딪히는 소리만으로 교감할 수 있는 오랜 지인 말이다. 찬바람 위세의 끝자락이면 그런 지인과 단둘이 어스름한 주점에 앉고 싶다. 차르르 차르르 꼬치구이 익어가는 소리와 가벼이 흩날리는 연기에 둘러싸이면 그렇게 포근하고 아늑할 수가 없다.

꽂기 전 살짝 익혀요

봄이 왔는지 안 왔는지 아리송한 이맘때 대나무는 바지런히 어린 순을 틔운다. 죽순을 새끼손가락만한 길이로 잘라 꼬치에 끼워 숯불에 구우면 말이 필요 없는 순수한 봄 맛이다. 어리고 수줍은 그 맛을 살짝 가려주고 싶으면 구워낸 죽순 위에 가쓰오부시를 솔솔 뿌려도 좋겠다. 봄을 알리는 꼬치구이용 채소가 죽순이라면 가을엔 토란이 괜찮다.

꼬치구이 하면 언뜻 별다른 조리법이 없어 보인다. 그냥 재료를 씻고 꿰고 굽는 과정이 전부인 것 같다. 하지만 세상 이치가 그렇듯 꼬치구이도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다. 굽는 사람의 작은 손놀림에 따라 맛도 색도 씹는 느낌도 달라진다.

죽순이나 토란 같은 단단한 채소는 씻고 나서 곧바로 숯불에 올리면 조금만 구워도 금새 돌처럼 딱딱해져 버린다. 사각사각 하면서도 연한 죽순과 살살 녹으면서 부드러운 토란의 본래 식감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진다. 죽순과 토란 본연의 식감을 살려내고 싶으면 꼬치에 꽂기 전 미리 살짝 익히면 된다. 특히 토란은 충분히 쪄내는 게 좋다.

고기는 자주 뒤집어요

꼬치구이 하면 숯불이다. 재료 전체의 맛을 살리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숯불이 빨갛게 달궈지면 사방으로 원적외선이 나와 재료를 속까지 충분히 잘 익힌다. 가스불에 구우면 자칫 겉은 타고 속은 설 익는 난감한 사태가 빚어지기 일쑤다.

재료에 따라 화력을 조절하는 것도 꼬치를 맛있게 굽기 위한 숨은 센스다. 일반적으로 고기 꼬치를 구울 땐 채소보다 숯을 많이 넣어 화력을 세게 한다.

보통 고깃집에서 고기를 구울 때는 가능한 적게 뒤집으라고들 한다. 한 번 뒤집을 때마다 육즙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고기 꼬치를 숯불에 구울 땐 반대다. 수시로 뒤집어야 제 맛이 난다. 일식 조리 경력 올해로 26년째인 다카노리 후쿠다 그랜드하얏트서울호텔 주방장은 "표면부터 익는 가스불 구이와 달리 숯불에선 재료의 겉과 속이 함께 익으며 육즙이 잘 빠져나가지 않는다"며 "재료 안에서 육즙이 골고루 퍼지도록 꼬치를 자주 뒤집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료 맛 살리는데 꼬치도 한몫 한다. 이상적인 맛을 내려면 사실 나무보다 철로 만든 꼬치를 쓰는 게 좋다. 재료 속까지 열이 잘 전달되니 아무래도 더 골고루 익는다.

익은 다음 소스 발라요

후쿠다 주방장은 요즘 호텔 일식당에서 세계 3대 진미로 불리는 식 재료 중 하나인 거위 간(푸아그라)과 달팽이 꼬치구이를 선보이고 있다. 서양요리에 주로 쓰이는 푸아그라나 달팽이를 꼬치구이로 맛볼 수 있는 곳은 일본 현지에서도 거의 없다고 한다.

사케를 섞은 물에 담가 한 번 데쳐내 잡냄새를 없앤 다음 손질해서 꼬치에 끼워 구운 달팽이는 소라처럼 식감이 오돌도돌하다. 푸아그라 한 조각을 입안에 넣으면 사르르 풀어지는 게 꼭 따뜻한 아이스크림 같다.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꼬치를 하나하나 구워내는 후쿠다 주방장을 가만히 지켜봤다. 작은 항아리에 들어 있는 소스에 꼬치를 담갔다 꺼내는 손놀림에서 규칙을 찾아내려 애썼지만 결국 허탕이었다. 후쿠다 주방장은 "규칙이 아니라 감"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소스를 바르고 구우면 빨리 탈뿐더러 맛이 제대로 스며들지 않는단다. 어느 정도 익힌 다음 발라야 할지, 몇 번 바르면 좋을지 모두 그때그때 다르단다.

그에게 염치없게도 소스 레시피를 물었다. "아주 간단하게라도…"하고 말끝을 흐리며 살짝 떼도 써봤다. 하지만 돌아온 건 조용한 미소와 "시크리또"란 대답이다. 역시 비밀인가. 봄이 도대체 언제 오는지 알려주지 않는 자연처럼.

임소형 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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