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동계 올림픽은 종료했지만 '국민적 관심사'에 해당하는 스포츠 이벤트가 줄지어 예기된 상황에서 보편적 시청권의 문제는 계속 논의될 필요가 있다. 채널이 넘쳐나는 미디어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우리의 고민은 접근의 희소성이 아니라 오히려 볼 것이 너무 많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방송의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해묵은' 문제가 새삼스레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사들의 이권 다툼의 모양새로 표면화됐지만 이 갈등의 본질은 방송의 공영성이라는 규범적 가치 대 경쟁과 선택이라는 시장적 현실원칙 간의 충돌에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방송법 76조 '방송프로그램의 공급 및 보편적 시청권'에는 보편적 시청권 같은 추상적 가치와 더불어 프로그램 유통에 관련된 이해관계 조정의 필요에 관한 현실적 의식이 함축되어 있다. 이 법대로라면 방송사업자는 다른 방송사업자에게 프로그램을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장가격으로 차별 없이 제공'하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중계방송권 확보에 따른 과도한 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중계방송권의 '공동계약'을 '권고'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법적 이상과 달리 현실에서 보편적 시청권은 실행주체가 부재한 속 빈 개념이 되면서 각 방송사가 자기 입장을 내세우기 위한 명목적 수단으로 활용됐다. 예컨대 KBS와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시청자에게 봉사할 의무를 침해 당했다는 궁색한 논리에 기대어 억울함을 호소하고, SBS는 다른 지상파 방송들의 무관심을 무릅쓰고 (독점이 아니라) '단독'으로 거액의 비용을 감당하면서 국민의 시청권을 보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를 인정받기는커녕 자신의 중계권을 침해 당했다며 분개하고 있다.
방송법 1조가 규정하듯이 방송의 목적은 공히, 시청자 권익보호 및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에 있다. 또한 저명한 언론학자인 제임스 커런은 '민주적인 미디어 시스템' 모델을 제안한 바 있다. 이 시스템은 공ㆍ민영 방송사를 포함한 일반 미디어 조직 및 전문ㆍ소수 미디어 조직들 간 유기적 연계와 체계적 역할 분담을 통해 사회적 차원에서 포괄적 공익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요컨대 공익성은 개별 미디어 조직의 구조 및 운영상의 특이성을 넘어서 공동의 협력 하에 추구되어야 할 사회적 가치이지, 하나의 파이를 놓고 세력 다툼을 통해 획득되는 상품적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면 KBS, MBC, SBS가 사회의 공기로서 공익에 기여해야 하는 공동 책임을 간과한 채 보편적 시청권을 자기 정당화 및 상대편 비방의 논리로 오용하는 양태는 현재 한국 방송계에 만연한 탈민주적 이기주의 및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따지고 보면 소위 IT 미디어 강국에서 보편적 시청권이 논쟁이 되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요즘의 방송 기술 환경에서 미디어 시스템이 웬만큼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회라면 접근 '여부'는 더 이상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 게 정상이다. 질적으로 함량 부족인 프로그램에 있어 비록 물리적으로 접근 가능할지라도 문화적으로는 수용이 거부된다는 사실을 이번 SBS 동계올림픽 방송 사례가 증명했다. 보편적 시청권의 궁극적 가치는 물리적 전달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기꺼이 시청하고 싶은 품질과 품격을 갖춘 프로그램의 제공에서 실현된다는 '해묵은' 진리를 더욱 냉철하게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예란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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