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에 대한 염원이 뜨거웠던 1980년대 중반에 대학원을 다녔다. 수업 도중에도 통일 논의가 활발했다. 통일은 반드시 되어야 하는 것인가, 통일의 실익이 뭔가, 통일 방식은 어떤 모습일까 등등 구름 잡는 듯한 논쟁이 오갔다.
하지만 당시 학계에서 다소간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통일의 방식은 이랬다. 김일성이 사망하면 김정일의 장악력이 다소 약해지면서 경제 교류가 이뤄질 것이고, 이에 따라 점차 북한지역의 민주화도 진행된다. 그리고 남쪽도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간세력이 집권할 경우 남북 정권이 힘을 합쳐 통일을 진행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줄거리였다. 그래서 북한과 우선 경제교류를 활발히 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정부차원에서 교류협력 방안도 추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9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북한을 방문하여 '금강산 관광 및 시베리아 공동개발 등에 관한 의정서'를 체결한 것도 그 일환이었을 테다.
1998년 6월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정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이 이뤄졌고, 5개월 뒤인 11월에는 금강산 관광선인 '금강호'가 첫 출항을 했다. 다음해 2월에는 현대그룹 내에서 대북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아산이 출범했다. 정 명예회장의 호인 '아산'을 붙여 그의 통일에 대한 갈망을 담은 것이었다. 기업적인 측면에서는 대북사업이고, 국가단위에서 보면 통일의 물꼬를 트는 작업이었지만 관광이 중단된 지금 이념 갈등의 제물로 퇴락한 상태다.
결국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이 18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유는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사업 정상화를 이루지 못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남한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직후인 2008년 8월 조 사장이 현대아산 대표에 취임해 관광 재개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했으나 1년 7개월간 마음고생만 실컷 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 전 1,000여명이었던 직원을 400여명으로 줄이는가 하면 임직원의 급여를 삭감하거나 유보하는 등 자구책을 펼쳐 왔다. 그러나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를 더욱 견딜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이 중단된 것은 북한에도 책임이 당연히 있겠으나 '햇볕 정책'에 과다한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우리 정부도 책임이 크다.
정부가 관광객 신변안전 등을 빌미로 현대아산의 대북관광사업 재개를 막는 핵심적인 이유는 '관광 대가' 때문일 것이다. 보수진영에서 주장하듯 이 돈이 북한의 (핵)무기개발 등에 쓰인다는 것인데, 참 막연하고 난감한 이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관광대가의 성격이나 금액규모 등을 감안하면 과도한 측면이 있다. 현대아산이 북한에 지불한 돈은 연간 통상 1,100만~1,300만달러로 관광객이 최대 성황을 이뤘던 2007년의 경우 2,030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관광객 1인당 평균 60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개성공단 북측인력 임금총액이 2008년 2,700만달러, 2009년 3,800만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절반이 채 안되는 수준이다.
특히 남한에 손길을 내밀던 북한이 여의치 않자 나진항을 고리로 중국에 기대는 것이 걱정이다. 중국은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동북3성 개발에 북한을 이용하려는 측면이 있다. 북한이 내미는 손을 계속 뿌리치면 중국만 좋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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