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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7> 르완다에 봉사의 닻을 내린 뉴욕 뱅커 제프리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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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7> 르완다에 봉사의 닻을 내린 뉴욕 뱅커 제프리 리

입력
2010.03.1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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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잘나가던 한인 은행가가 돌연 사표를 던지고 아프리카로 향했다. 가슴 속에 품은 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가난한 나라 르완다에서 극빈자 은행을 운영하며 검은대륙에 새로운 희망을 싹 틔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인생 후반의 희망도 함께 커가는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뉴욕에서 2008년 12월까지 신한아메리카은행 행장을 역임했던 제프리 리(57)씨 이야기다. 1979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해는 1983년. 캘리포니아에 있는 퍼스트인터스테이트 은행의 본점 심사부에서 대출심사역 훈련시키는 일을 시작으로 한 그는 미국 금융계에서 신화적인 성공가도를 달렸다. 1997년 프리미어은행의 은행장에 올라 7년을 재직했고 그 동안 은행을 16배 성장시켰다.

금융계 경험 중 최고의 황금기를 보낸 그는 돌연 2004년 은행장 직을 그만 두고 인생의 하프타임을 선언했다. 그는 "밥 버포드가 쓴 <하프타임> 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성공 위주의 삶에서 의미 위주의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깊어졌다. 1년 동안 쉬면서 인생 후반전의 전략을 짜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곧 헤드헌터들의 집요한 요청에 아메리카신한은행의 행장직을 떠맡았다. 뉴욕의 본점에서 많은 일을 했다. 4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은행을 총자산 3배 이상으로 성장시켰고, 지점도 3개에서 14개로 확장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그는 영적 나이가 30년이 되는 해에 그 십분의 일인 최소 3년을 하늘에 헌신하기로 약속했다. 마침내 약속한 30년을 채우자 그는 미련 없이 아메리카신한은행장 직마저 그만두고 아프리카 르완다로 향했다.

그가 르완다에서 하는 봉사활동도 금융업무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를 하는 우르웨고 오퍼튜니티은행(UOBㆍUrwego Opportunity Bank)의 책임자를 맡고 있다. 르완다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중의 하나. 1,000만 명 넘는 인구의 3분의 1이 아직도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나라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오래 전부터 세계 많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있어 온 소액금융이다. 2006년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와 그가 설립한 그라민은행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극빈자 은행이다. 마이크로 파이낸스는 한마디로 지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해 재활을 돕는 것이다. 금융서비스에는 소액대출을 포함해 저축, 마이크로 보험, 송금, 그리고 그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프로그램 등이 모두 포함된다.

마이크로 파이낸스의 역할은 상당하다. 보통 처음 받는 대출금은 미화 38달러 정도. 2, 3년이 지나면 이들이 500~1,500달러를 빌려서 갚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새는 초가지붕을 개량해서 양철지붕으로 바꾸고, 염소나 소를 구입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고, 결혼 못한 총각이 결혼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사회에서 소외됐던 이들이 단 몇 푼을 기반으로 성공해 자기 자녀는 물론 다른 고아들을 5~10명씩 입양하고 교육까지 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저녁 한 끼 먹는 돈으로 이런 엄청난 변화가 이루어는 것에 놀랍다"고 했다.

그는 르완다로 온 이후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보너스로 받았다. 지난 한 해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 말라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여행했다. 참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현실을 보게 됐고 이젠 흑인들 얼굴의 차이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그는 간호사 출신의 아내가 곁에 있어 외롭지 않다. 물과 전기가 자주 끊어지고 물이 나와도 수압이 낮을 때가 많아 어려움이 많다. 바퀴벌레 때문에 큰 시달림을 받은 적도 있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잘 자란 두 딸이 미국 사회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어 더욱 홀가분하게 봉사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고 했다. 큰 딸은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미 공군 정보장교로 이라크에 파병 나가 있다. 둘째 딸은 작년에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하고 의류전문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는 르완다에서의 봉사 생활로 자신의 삶이 더욱 충만해졌다고 자부한다. "아주 적은 돈으로도 상당히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또 이런 작은 나눔이 주는 기쁨은 결코 작지 않다. 아마도 나누어 보지 않은 사람은 알기 힘든 기쁨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물, 재능을 남들을 위해 나눌 때 진정한 기쁨과 감격이 마음 속에서 방울방울 솟아난다. 나눔이란 작은 걸 주고 큰 걸 얻는 것으로, 아주 투자수익성이 높은 종목이다."

■ 제프리 리의 은퇴와 봉사에 대한 제언

첫째, 영어로 은퇴를 'retiring'이라 한다. 나는 이것을 인생의 타이어(tire)를 바꾸어 끼우는 're-tiring'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은퇴를 너무 준비 없이 맞이하는 것 같다. 인생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너무 일찍 은퇴를 맞이하는 분들에게 30여 년의 삶은 너무나 긴 시간이다. 이 시간을 준비하고 살아가는데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인생의 타이어를 바꾸어 끼우고 제2, 제3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이 준비는 40대부터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인생에 있어 주어진 것은 시간, 재능, 그리고 재물이다. 우리는 이것들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단지 이들의 관리인일 뿐이다. 이 귀한 것들을 나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이 귀한 것들을 남들을 위해, 나보다 불운하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때 인생의 보람과 의미는 더 증폭될 것이다.

셋째, 우리가 사는 지구의 세계는 참 넓고 할 일도, 볼 일도, 경험할 일도 많다. 이곳에 와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많은 꿈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고 있다. 우리의 시야를 넓게 하자. 관광도 좋지만 세계를 체험하도록 권하고 싶다. 세계는 이제 하나다. 세계를 누리기 바란다. 세계를 무대로 생각하고 세계를 인생에 담기 바란다.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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