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계성 칼럼] 유산 다툼 '소용돌이 정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계성 칼럼] 유산 다툼 '소용돌이 정치'

입력
2010.03.19 06:20
0 0

외교관 출신의 미국 정치학자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의 정치를 '소용돌이 정치'(The politics of vortex)라고 했다. 사회의 모든 요소가 중앙권력을 향해 소용돌이쳐 몰려들어가는 현상이 한국 정치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미 군정시절부터 1963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근무한 경험에 기초한 분석이다. 한국 사회의 동질성과 중앙집중화 현상을 무리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해방 후 혼란으로 점철된 한국 정치의 현상을 꿰뚫은 해석으로 평가 받는다.

분화하는 DJㆍ친노 진영

6ㆍ2지방선거를 앞두고 요동하는 요즘 정치판을 보면 헨더슨의 통찰과 해석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신념과 철학에 관계 없이 서식할 정당을 찾아 전전하는 정치철새가 도래하고, 소외된 세력의 창당 러시는 권력을 향한 소용돌이 현상에 다름 아니다. 헨더슨은 분권화와 다원화를 소용돌이 정치현상의 처방으로 제시했지만 분권화의 장치인 지방선거까지도 중앙 집중 정치의 연장에 불과할 뿐이다.

김대중ㆍ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야당 세력은 두 갈래에서 세 갈래로 분화하는 과정에 있다. 지난 1월 창당한 국민참여당은 참여정부 시절 내각과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 주축이다. 국참당 창당선언문의 키워드는 복지국가와 균형발전, 참여민주주의, 평화와 통일의 한반도 시대 준비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정치신념과 가치로 봐서는 굳이 딴 살림을 차릴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굳이 신당을 만든 것은 민주당 내에 그들에게 허용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엊그제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옛 동교동계 일부가 야당 정통성 회복을 내걸고 '평화민주당' 창당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축적된 인적 자원이 DJ,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몰려드는 '소용돌이 정치' 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보다 규모는 작지만 진보정당의 영역을 분할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경쟁, 자유선진당의 충청지역 기반에 도전하는 심대평 씨의 재 창당 움직임도 또 다른 정치 소용돌이다. 여권 내에 뿌리 깊은 친이-친박 갈등 역시 보수세력 내부의 주도권과 차기 권력의 향한 소용돌이 정치라는 점에서는 본질이 다르지 않다.

정치 소용돌이를 진정시키고 질서를 만들어내려는 움직임이 없지는 않다. 범야권에 속하는 5개 야당과 4개 시민단체의 '5+4 회의'가 주요 정책에서 연합을 성사시킨 데 이어 수도권의 야권 단일후보 선정에 의견을 접근시킨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심판과 견제를 한 목소리로 외치는 그들이니 한나라당과 1 대 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명분에서는 뭉치기가 어렵지 않았다. 수도권에서 범야권과 시민단체가 단일후보를 낸다면 그 파괴력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분과 자리를 나눠야 하는 '디테일'에 들어가면 사정은 또 달라진다. 진보신당은 수도권 지역에서 최소한 광역단체장 한 곳 보장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일찌감치 협상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나머지 '4+4 회의'는 가까스로 서울과 경기의 기초단체장 40여 선거구에 연합후보를 내고, 광역단체장은 경선방식으로 선출하기로 잠정 합의했지만 상대적으로 가진 것이 많은 민주당의 추인이 변수다. 민주당의 내부 반발 분위기로 볼 때 디테일에 숨어 있는 악마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을 성싶다.

아쉬운 야권통합 리더십

헨더슨은 한국 소용돌이 정치의 원인을 인종ㆍ언어ㆍ문화의 동질성, 그리고 대중과 엘리트 간의 매개집단 부재에서 찾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는 포화상태에 이른 생계형 정치인들 때문이다. 한 번 정치인이면 영원히 정치인으로 생존하는 구조와 문화가 정치과잉을 만들고, 이것이 선거 때마다 갈등과 분열의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 악순환 구조를 타파할 리더십의 형성은 불가능한가. '민주정부 10년'을 책임졌던 이들은 김대중ㆍ노무현의 정치 유산을 탐하기보다는 이 문제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