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무(Chimuㆍ1,300~1,470년 경) 시대에 만들어진 나무 모형이다. 나무를 깎아 인물과 건물을 만들고 조개나 진주를 다듬어 박았다. 각기 장례행렬, 왕의 미라를 위한 궁중 의례를 표현했다. 페루 북부 트루히요 평원지역의 태양의 신전, 달의 신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모형들은 사후 세계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먼저 장례행렬상은 사탕수수 줄기로 만든 판 위에 천을 덮고, 그 위에 나무로 14명의 인물을 만들어 발을 바닥과 묶었다. 3열로 줄지어 서 있는데 가운데 2명은 미라가 담긴 타원형의 물체를 짊어지고 있다. 겉에는 모두 새의 깃털을 붙였고, 수행원들의 눈과 몸에는 조개를 박아 장식했다. 앞줄의 인물들은 무기를 들고 있고, 각각 아기 한 명과 원숭이 한 마리를 업고 있는 인물들이 뒤에 배열되어 있다.
또 하나의 모형은 왕의 조상으로 보이는 인물을 위한 의례 장면이다. 치무의 수도였던 찬찬의 모습을 간략히 모형으로 만들었다. 한쪽 면에 건물을 만들고 그 아래 왕의 조상 미라가 앉아 있고, 뒷벽에는 2명의 미라가 추가로 배치돼 있다. 단을 이룬 궁중의 앞마당에는 26명의 인물과 각종 악기, 상자, 항아리 등을 깎아 배열했다. 장례행렬상과 마찬가지로 곳곳에 조개와 진주를 박아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이런 유물들은 생전의 모습이 사후에도 그대로 이어지길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됐다. 원래 태양의 신전과 달의 신전은 모체(Mocheㆍ100~700년 경) 시대의 신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년도 더 지난 치무문명기의 유물이 이곳에 묻힌 것은 특정 문명은 쇠퇴해도 신과 조상에 대한 숭배는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또 둥근 형태의 미라나 앉아있는 미라는 안데스 고대문명에서 15세기 잉카제국에까지 연결되는 전통이다. 시대와 지역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면면히 이어진 페루 문명의 힘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흥선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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