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는 내리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어렵다. 우선 경제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데 신경이 곤두선 정부가 금리 인상을 반기지 않는다.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 차관을 참석시켜 노골적으로 한국은행을 압박하는 데서도 조급한 성과주의를 엿볼 수 있다. 은행 빚이 많은 가계나 기업도 금리 인상이 달가울 리 없다. 더욱이 지방선거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통화정책에 정치 논리가 개입할 소지가 다분한 상황이다.
한은 총재는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통화정책의 최고 수장이자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마지막 보루다. 박승 전 한은 총재는 어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은 총재를 '나라의 금고지기'로 규정했다. "금고에서 돈을 풀면 경기도 흥청대고 정부도 국민도 좋아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재정적자와 물가상승의 부작용이 나온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한은의 통화정책이 정부에 휘둘릴 경우의 후유증은 명약관화하다. 적절한 시기에 금리를 올리지 못해 거품을 키우면 경제안정 기조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한은 총재의 가장 중요한 자격 요건으로 독립성과 전문성이 꼽히는 이유다. 금융전문가 72명을 대상으로 한 경실련 조사에서도 83%가 통화정책의 독립성 의지를 한은 총재의 제일 덕목으로 꼽았다.
이런 기준에서 보자면 김중수 내정자는 실물금융 및 통화정책의 전문성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현 정부 초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MB노믹스' 전도사를 자임해 온 친정부 인사다. 그는 며칠 전 라디오에 출연해 "한국은행도 정부다.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고, 한은 총재 내정 직후 기자들과 만나선 "정책 방향에 대한 최종 선택은 대통령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신 있게 정부를 견제하며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은 총재 인사청문회 방안이 무산된 만큼, 그는 4월 1일 임기를 시작한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출구전략의 시기와 방법을 본격 검토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정책 협조'를 명분으로 정부 눈치만 보다가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