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상 우월한 '갑'의 지위를 이용해 제약회사에 수억~수백억원의 기부금을 강요한 대형 종합병원들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처음으로 제재를 내렸다. 대형 병원들은 제약사에 기부금 납부 여부는 물론, 기부금 액수, 납부 방법까지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18일 제약사에 기부금을 내도록 강요한 가톨릭중앙의료원, 연세의료원에 각각 3억원, 2억 5,000만원의 과징금과 함께 시정명령을 내렸다. 기부금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서울대병원, 아주대의료원은 시정명령만 받았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4개 대형 병원은 2005~2008년 병원 건물 건립 또는 부지 매입을 명목으로 의약품 거래 관계를 맺은 14개 제약사로부터 총 241억원의 기부금을 받았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의대 학생회관을 건립한다며 170억 9,900만원을, 연세의료원은 병원 건립 자금으로 61억 400만원을 받았다. 서울대 병원과 아주대의료원도 각각 기부금 4억 7,000만원, 4억 5,300만원을 받았다.
공정위는 대형 병원들이 제약사 측에 공문을 보내거나 임원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방식으로 기부금 납부를 강요한 사실을 밝혀냈다. 한 병원은 기부금을 내는 제약사의 의약품을 교체하지 않고 일정기간 사용하거나, 기존에 쓰던 의약품을 기부금 납부 회사의 것으로 교체하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의과대학 산하 연구소에 관련업체가 연구기부금을 내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있으니, 대학 본부가 기부금을 직접 병원으로 보내달라'는 공문이 발견되는 등, 대학 차원에서 기부금 모금을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부금을 받는 쪽이 액수 및 납부 시기ㆍ방법 등을 결정해 통보하는 등 주객이 전도된 양상으로 모금이 이뤄졌다"며 "의약품 품질이 아닌 기부금 납부에 따라 거래관계가 유지될 가능성이 커 건전한 경쟁을 해치는 행위"라고 말했다.
또 기부금 액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과징금을 부과한 것에 대해서는 "기부금 납부와 직접 관련된 관련 매출의 산정이 어려워 (매출액에 일정 비율을 곱하는 정률 과징금이 아닌) 정액 과징금을 부과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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