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진해, 해군 하사관의 결혼식을 자주 보았다. 하사관은 계급을 갈매기 마리 수로 불렀던, 지금의 부사관이다. 그때 따라 불렀던 군가 '브라보 해군'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커다란 군함 타고 한 달 삼십일/ 넘실대는 파도에 청춘을 바쳤다.' '출동'이란 이름으로 늘 바다에 떠있던 청춘들의 바쁜 결혼식은 하루에 모든 것을 끝냈다.
사진관에서 결혼사진 한 장 찍고 신혼여행은 코로나 택시를 대절해 시내 한 바퀴 도는 것이 전부였다. 택시 앞은 오색 색종이로 장식을 하고 꽁지엔 빈 깡통을 여러 개 매달아 요란한 소리를 나게 했다. 그 결혼 드라이브는 신랑이 해군이었던 만큼 반드시 이 충무공 동상을 한 바퀴 돌아갔다.
충무공 동상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를 다녀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보았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풍경으로 기억하고 있다. 얼마 전 결혼식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 신부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는 웨딩카의 운전을 어머니들이 자청했다고 한다.
신랑에게는 장모가, 신부에게는 시어머니가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공항까지 신혼부부를 '고이 모시고 간다'고 했다. 부부가 된 후의 첫 출발인 만큼 어머니들이 축하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었다. 그 운전을 신랑 친구들이 주로 맡았는데 어머니가 직접 운전을 해주는 축복, 참 뜻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일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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