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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교육보감] <8> 의욕과 의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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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원의 자녀교육보감] <8> 의욕과 의무감

입력
2010.03.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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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지금 가장 권장하는 학생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당연히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하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누구를 위해 공부하느냐는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 자신을 위해 공부한다는 반응이 분명하게 나오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또 왜 공부하느냐고 이어서 물었을 때 공부의 재미와 의미를 분명하게 말하지 않아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학생들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의욕’이 아니라 하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여도 의욕과 의무감은 내용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의욕이 생기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열심히 하게 된다. 반면에 의무감이 강해지면 반드시 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지만 몸이 말을 잘 듣지 않게 된다. 또 의욕은 보통 그 일 자체를 열심히 하겠다는 적극성을 동반하지만 의무감은 그 일 자체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의욕은 도전정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의무감은 성공에 대한 강박을 낳는다.

마지막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학생들은 처음에는 남들보다 강한 의무감으로 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지만 그 과정에서 차곡차곡 쌓인 거부감으로 인해 슬럼프에 쉽게 빠지고 기대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쉽게 좌절한다. 고학년이 될수록 시들해지는 공부를 한 탓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학생들이 꽤 많이 있다. 그 배경에는 의욕을 길러주기보다는 의무감을 불어넣어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성적 향상이라는 결과를 얻어야 하는 사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일제고사 성적에 시달리는 학교 현장도 비슷한 처지다.

학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자녀들에게 하기 싫은 것이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의욕이 아니라 의무감으로 하는 게 공부라는 말인데 그 속에 무서운 함정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있는가? 의무감으로 얻은 성적은 사상누각일뿐더러 심각한 후유증을 동반한다는 점을 정말 알지 못하는가? 재미있었던 일도 무리해서 힘겨운 경험을 하게 되면 다시는 하기 싫다는 느낌이 생긴다.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문제가 된다. 의욕을 꺾는 것이다. 시험에 대한 부담과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공부의 재미를 빼앗는 주범이다.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를 붙어야 의욕이 샘솟게 된다. 자녀가 의욕을 가지도록 기다려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욕을 보이는 데 필요한 조건을 같이 준비해가면서 말이다. 그러다보면 다양한 경험 속에서 탐색하던 자녀가 어느 한순간 의욕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날이 온다. 오고야 만다.

점점 성적 역전의 확률이 줄어들고 있다. 초등, 중등에서는 부진했지만 고등학생이 된 다음에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 진학에 성공했다는 보도나 말을 예전에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져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는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다르다. 공부 의무감에 사로잡혀 공부에 대한 의욕을 보이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쉽게 얘기해서 요즘 학생들은 이미 초등학생 시절부터 공부에 지쳐 역전에 필요한 의욕 자체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의무감에 시달린 경험이 강해지면 의욕을 회복하기 어려운 법이다. 물론 의무감으로도 명문대 진학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확률적으로 따지면 의욕을 가지고 공부한 학생들의 비율이 훨씬 높다.

지금까지의 말이 마치 사육을 포기하고 방목하라는 말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의무감을 강요하면서 억지로 얻은 성적은 너무도 불안하다. 반면에 성적은 부진하지만 그래도 공부에 대한 의욕을 잃지 않은 학생에게는 희망이 있다. 의욕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고 의무감만 남아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넘쳐나고 있다.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닌 학생들. 공부하는 모습을 취하고는 있지만 주변의 비난이 두렵고 스스로 불안해하는 학생들. 의무감으로 학생들을 압박하는 환경은 지금 너무나 충분하다. 여기에 부모까지 가세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자녀가 의무감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 의욕을 지키고 키울 수 있는 준비를 하나하나 해나가도록 돕자. 이 길만이 자녀를 살리고 동시도 부모도 살리는 진짜 보약이다.

박재원 비상교육공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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