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줄곧 특종 기사만 써오신 달인 기자 '오보' 김병만 선생을 모셨습니다."
개그맨 김병만(35)이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뜬금없이 던진 말이다. KBS2 TV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달인'팀의 류담(31)과 노우진(30)이 곧바로 개그를 만들어간다. "날아가는 새를 보고 'UFO(미확인 비행물체)의 존재를 김병만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라고 멘트를 날리거거나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를 보고 '영화에서나 보던 괴물이 한강에 살고 있는 걸 밝힌 게 나'라고 떼를 쓰면 재미있겠다"며 의견이 분분하다. 17일 개그콘서트 녹화를 몇 시간 앞두고 서울 여의도 '달인'팀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그들을 만난 기자는 순식간에 방청객이 돼버렸다.
아이템 구상은 매번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달인'의 아이템이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다가 만들어낸 '16년간 최면술을 연구해온 잠결 김병만 선생',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다가 생각해낸 '16년간 추위를 못 느끼고 살아오신 오한 김병만 선생' 등이 대표적이다. 김병만은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서로에게 전화해 반응을 듣고 메모해 놓는다"고 했다.
2007년 12월부터 그렇게 '달인'을 만들어온 지 벌써 2년 3개월. 방송 횟수로는 116회에 달한다. '달인'은 지난 14일 방송에서 10년이 넘는 '개그콘서트'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래 방송된 코너로 등극했다. 1위 '봉숭아학당'이 출연진을 바꿔가며 유지해온 코너임을 감안할 때 고정 출연진으로는 최장수 코너인 셈이다.
이 코너의 아이템은 매주 1개. 녹화할 때 공연한 두세 꼭지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을 내보내기 때문에 실제 공연한 아이템은 300개가 훌쩍 넘는다. 워낙 많다 보니 전에 했던 아이템이 아닌지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확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재미가 없으면 가차없이 코너를 폐지하는 '개그콘서트'에서 2년 넘게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은 다양한 시도에 있다. 김병만은 "별 재주도 없는데 달인이라고 잡아떼는 인물, 실제로 달인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 등 여러 유형을 연기했는데, 달인다우면서도 가학적인 인물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체조 선수처럼 평균대 위에서 재주를 넘거나 대리석 판 10장을 팔꿈치로 깨뜨리는 등 진짜 달인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관객들이 '정말 달인이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그는 평균대 위에서 떨어지거나 아픈 팔꿈치를 잡고 비명을 질러 웃음을 자아낸다.
레몬을 통째로 입에 넣고 씹으면서도 "전혀 맛을 못 느낀다"거나 얼음물에 들어가서도 "전혀 추위를 못 느낀다"며 악을 쓰고 견뎌내는 그를 보면서 가슴이 짠한 법도 한데 이 사람들, 매정하다. 노우진은 "웃길 수 있으니까 오히려 좋다"고 했고, 류담은 "우리 스스로 더 즐겨야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 했다. 김병만조차 "'어~' 이런 소리 내면서 안타까워하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즐기세요. 여러분이 웃어주시는 게 우릴 도와주는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월, 화요일에는 '개그콘서트' 연출자에게 아이템 검사를 받고, 수요일에는 녹화, 목요일 하루 쉬고 금요일부터 아이템을 구상하는 등 생활의 대부분을 '개그콘서트'의 '달인'에 쏟고 있는 그들이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나들이에도 나섰다. 다음 tv팟(tvpot.daum.net)에서 볼 수 있는 '김병만의 폭쇼' 코너인데, 리포터 류담과 카메라맨 노우진이 산이나 공원 등으로 찾아가 달인 김병만을 인터뷰하는 동영상이다. 현재 14개 에피소드를 촬영해 이중 3편을 공개했는데 3일 만에 클릭 수 4만건을 넘을 만큼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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