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들이 임박한 '회계 태풍'에 떨고 있다. 모든 일반 상장사(1,672개)와 253개 금융회사(비상장 190개 포함) 등 총 1,925개 기업이 내년부터 의무적으로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회계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 당장 내년부터 따르지 않으면 외감법 위반으로 상장폐지까지 몰릴 수 있지만 대다수 기업은 눈치만 살피는 형국이다.
IFRS가 뭐길래
IFRS는 지금까지 한국 기업이 써온 미국회계기준(US GAAP)을 토대로 한 한국회계기준(K-GAAP)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크다.
대표적인 것이 '원칙 중심'의 회계. K-GAAP는 여러 규정을 세세히 정해놓고 따르는 '규정 중심'이었으나 IFRS는 큰 원칙에 맞고 근거만 설명할 수 있으면 형식은 크게 따지지 않는다. 자연히 재무제표는 단순해 지고, 대신 주석이 길게 늘어나게 된다. 그만큼 이를 해석할 회계사 등 전문인력과 당국의 감독이 훨씬 더 많이 요구될 전망이다.
또 하나는 '실질가치 반영'이다. 지금은 자산 항목에 반영하지 못하는 '브랜드 가치'같은 무형자산도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 있다. 또 현재 자본으로 잡히는 상환우선주가 IFRS에서는 곧 갚아야 할 '실질'을 반영해 부채가 된다. 감가상각의 개념도 달라져 고물이 된 선박이라도 고철의 가치는 인정해 자산에 반영될 수 있다. 지배ㆍ종속 관계에 있는 다수의 기업을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인식해 작성하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할 기업의 범위도 대폭 늘어난다.
기업을 재는 척도가 달라지므로, IFRS가 도입되면 동일한 기업이라도 자산과 부채 규모가 지금과는 달라지게 된다. 예컨대 공사 중인 건물도 매출과 이익에 반영하던 건설사의 경우 앞으로는 준공 후에야 매출과 이익을 반영할 수 있게 되는 만큼, 당장에는 매출이 줄고 부채는 늘어나게 된다.
왜 도입되나
지난 수십년간 회계기준의 표준을 놓고 벌어진 미국과 유럽의 대결에서 유럽이 이겼기 때문이다. 2000년 '엔론 회계부정 사건'으로 미국의 US GAAP이 급속도로 힘을 잃고 유럽연합(EU)이 회원국에 IFRS를 강제한 데 이어 일본(2005년)과 중국(2007년)도 IFRS를 도입한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국조차 2014년 전면 도입키로 했으며, 내년이면 전세계 150개국이 IFRS를 따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그동안 의심받던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을 높이고, 외국기업과의 재무제표 비교도 손쉽게 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표준이 된 IFRS의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준비 상태는
KT&G 등 14개 기업이 지난해 IFRS를 조기 도입한 데 이어 올해 LG그룹 계열사 등 23개 기업이 추가로 IFRS 대열에 동참하기는 했으나, 다른 대부분 기업은 아직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16일 금감원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IFRS 의무대상 기업 가운데 4분의1(1,190개 응답기업 중 296개)이 준비 작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또 도입준비에 들어간 기업의 40% 가량도 아직 '준비 및 분석단계'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IFRS에 따라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할 경우 일반기업은 6~18개월의 시간과 2억8,000만원의 준비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돼 중소 상장기업의 경우 내년 회계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금감원 장석일 IFRS 팀장은 "대다수 기업이 올 상반기 안에 준비에 들어가겠다고는 하지만 새 회계기준에 적응하려면 돌발 사태 등을 감안, 가급적 여유기간을 가질 필요가 있어 하루빨리 준비에 착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사용중인 회계기준법. 기업의 회계 처리와 재무제표에 대한 국제적 통일성을 높이기 위해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공표하는 회계기준이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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