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프로파일러가 본 김길태/ 처벌에 대한 두려움·죄의식…사이코패스 범죄와는 '거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프로파일러가 본 김길태/ 처벌에 대한 두려움·죄의식…사이코패스 범죄와는 '거리'

입력
2010.03.15 23:05
0 0

"그는 사이코패스(Psycho-pathㆍ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아니다. (여중생 살해는) 범죄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게 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부산 여중생 이유리(13)양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33)에 대해 범죄행동분석요원(프로파일러)들은 그의 성장환경과 성격, 과거 범죄행태, 장시간에 걸친 면담내용 등을 근거로 이같이 분석했다.

왜 죽였나

그간 김길태는 일부 전문가들에 의해 사이코패스로 분류됐다. 유영철 강호순 등 연쇄살인범은 보통 상대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는 평소엔 정상적으로 행동(직장, 가정 등 유지)하다가 충동을 이기지 못해 죄의식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거짓말에 능숙하며 책임감이 결여돼있다.

그러나 김길태는 정상생활을 하지 못했다. 휴대폰도 운전면허도 직장도 없고, 인터넷도 쓰지 않았다. 양부모가 있었지만 옥탑방에서 따로 살았다. 죄의식도 있었다. 1997년 9세 여아를 성폭행하려다 엄마에게 들키자 범행을 중단했고, 감금했던 여성을 제 손으로 풀어주기도 했다.

김길태 수사에 참여한 프로파일러 권일용(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경위는 15일 "교도소 출소 직후마다 범행을 저지른 걸 봐선 성적흥분에 각성(섹스중독의 아래단계)된 건 맞지만 사이코패스는 아니다"라며 "(이번 사건 전에는) 감금한 피해자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여기는 그릇된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법정에 설 때마다 성폭행 사실을 부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양 사건은 김길태의 의도를 완전히 벗어났다. 충동을 이기지 못해 도피 중에 다시 범죄를 저질렀는데, 납치→성폭행→감금이라는 기존 통제의 룰을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한몫 했다. 그는 프로파일러에게 "이번에 잡히면 평생 전자발찌를 차야 하는데 죽어도 싫다"고 했다. 권 경위는 "더는 검거되면 안 된다는 압박이 살인으로 이어졌고, 시신을 꽁꽁 숨겨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권 경위는 "만취 중 판단착오나 실수가 아닌 의도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왜 살렸나

그런데 김길태는 수배의 단초가 됐던 1월23일 저지른 납치감금 사건 때는 자신의 집에서 버젓이 감금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피해여성(22)을 풀어줬다. 심지어 상처부위에 연고를 발라주고 "제발 신고하지 말라"고 애원까지 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

전문가들은 김길태의 성장환경에 답이 있다고 본다. 그는 갓난아기 때 엄마에게 버려져 어려서부터 애정결핍에 시달렸고, 출생의 비밀을 안 뒤부터는 마지막 남은 존재감마저 무너졌다. 사람을 피하는 대신 특정 여성을 납치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통제하고 주인공이 되려 했다는 것이다. 성적 충동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동기이자 목적이 됐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본인의 성적욕망을 충족하고 애정결핍을 보상 받으려는 성향 때문에 자신이 피해여성을 협박해 신고를 안 하게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감금은 미리 짜놓은 범죄각본이 아니라 결여된 사회성을 보상받으려는 즉흥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프로파일러는 "단순한 성격이라 자신을 추켜세우고 동정심을 유발하고 신고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한 피해여성을 자신의 세계에 거주하는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여긴 것 같다"고 했다.

자백 어떻게 끌어냈나

김길태는 검거 첫날 3시간 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는 범인이 아니다"라는 주장만 했다. 권 경위는 첫날은 김길태의 얘기만 들어줬다고 했다. 이틀째는 권 경위를 '도와주는 사람'으로 각인시켰다. 권 경위는 김길태가 강한 척하다가도 "선생님 미안하다"는 얘기를 자주 되뇌었다고 했다. 나흘째 권 경위는 거짓말탐지기를 쓰자고 제안했다.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는 김길태의 말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권 경위는 "유사범죄 피의자들도 3일쯤 지나면 외부영향이나 과학적 장비에 심리적 방어망이 무너져 실토했다"고 설명했다. 14일 거짓말탐지기를 들이밀자 김길태는 "선생님도 알고, 나도 아는데"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