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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WSJ기자는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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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WSJ기자는 왜 그랬을까

입력
2010.03.1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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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는 분명 무례했고 핵심도 잘못 짚었다. 지난 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벌어졌던 해프닝 얘기다. 일국의 경제사령탑을 상대로 거시정책 운영방향과 과제를 묻고 듣는 자리에서 난데없이 룸살롱 문화를 들고 나온 것은 누가 봐도 부적절하다. 룸살롱 등 잘못된 직장 회식문화 때문에 한국 여성의 사회참여율이 저조하다는 질문은 뜬금없고, "기업체에서 재정부 직원들을 룸살롱에 데려가는 것으로 아는데 이에 대한 조치의 기준이 있느냐"는 물음은 의도적 도발처럼 들린다.

'룸살롱 질문' 고집 양식 의심

더구나 질문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관리에게 듣기 민망한 욕설까지 했다니, 양식이 의심된다. 정부가 미국 WSJ 본사에 유감을 표시하고 해당 기자에 대한 취재서비스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할 만도 하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욕을 한 행위만 사과했을 뿐, "누군가 해야 했던 질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어디선가 한국식 관변문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얘기를 듣고 한 건 올렸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태도와 접근방식은 명백히 틀렸다.

그런데 논점을 바꿔 올 들어 크게 변화한 해외언론의 논조와 겹쳐보면 좀 다른 맥락이 읽힌다. 일종의 견제 같은 것 말이다. 사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지구촌의 감탄과 부러움을 자아낸 한국경제의 급속한 회복세와 놀라운 성적은 올 들어서도 줄곧 뉴스가 됐다. 프랑스의 <르 피가로> 가 1월 중순'한국, 원자력 분야의 새로운 호랑이로 떠올라'라는 특집기사에서 작년 말 한국이 UAE 원전입찰에서 프랑스를 제치고 승자가 된 과정을 자세히 보도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즈음 삼성전자는 일본의 15개 전기전자업체의 이익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상최대의 2009년 실적을 발표하며 세계 IT업계 1위로 부상했고, 현대차 등 여타 한국의 간판기업들도 위기란 말을 무색케 하는 성과를 과시했다. 반면 이웃 일본에선 번영의 상징이었던 일본항공(JAL) 파산에 이어 열도의 자존심과 같았던 도요타 차량의 전면 리콜이라는 우울한 뉴스가 터졌다. 좀 우스운 얘기지만 여기에 '김연아-아사다 마오'의 피겨 대결로 대표되는 동계올림픽에서의 예상 밖 쾌거는 세계의 찬사와 함께 국민적 자부심을 한껏 돋웠다.

마침내 한국에 적대적 논조로 일관하던 <파이낸셜타임스> 는 2월 말 '한국은 더 이상 약자(underdog)가 아니다'라는 기사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약자 취급 받던 한국이 적절한 외교 및 경제 정책으로 국가위상을 크게 높여 부국(富國)문턱에 들어섰다고 찬사를 늘어놓았다. 같은 시기에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들도 '한국을 배우자'는 기사를 쏟아냈고, 한국의 교육열에 매료됐던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원전 르네상스를 언급하며 또다시 한국을 모범사례로 들었다.

임기의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집권세력과 정부가 우쭐할 만한 얘기가 쏟아진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충청도에 가서 "굽어진 것을 바로 펴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승승장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라고 나를 선택한 것 아니냐"고 되묻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아직 금리를 인상할 시기가 아니라는 게 정부의 확고한 생각"이라며 대놓고 중앙은행 영역까지 침범한 것은 이런 배경일 터다.

경제건강성 따져보는 계기 돼야

하지만 좋은 쪽만 보며 국운상승의 호기를 만났다고 떠드는 분위기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크다. 잘나가던 나라들이 방심해 죽을 쑤는 사이에 우리가 상대적으로 부각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반사이익이어서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뜻에서다. 자칫 가시와 발톱을 숨긴 외부의 칭찬과 환호에 빠져 국정 긴장감을 늦추면 언제든 뒤집기를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위기 이후 한국은 상위 20%만 빛나는 '양극화 중병'을 앓고 있다.

WSJ 기자의 빗나간 질문도 관 주변에 남아 있는 접대문화와 관치 등 자극적 화제로 한국 경제의 건강성을 따져보자는 선의로 해석하면 어떨까. 기자의 자질 운운하며 화내기에 앞서 동맥경화 증상이 뚜렷한 우리 경제의 건강진단서를 떼볼 때가 됐다.

이유식 논설의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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