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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유리 어머니, 길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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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유리 어머니, 길태 어머니

입력
2010.03.1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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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리고 어린 것이 가 버렸다. 훌쩍 떠나 버렸다. 일컬어 부산 여중생 납치 살해 사건. 하지만 이 사무적이고도 건조한 용어에는 자식을 앞세운 어머니의 찢어지는 가슴은 쏙 빠져 있다. 중학교 간다고, 그래서 노트 산다고, 어여쁜 딸과 할인점에 가기로 약속하던 장면은 어머니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이다. 그 마음을 모른다면 바보이거나 비정한 사람이다.

또 한 어머니가 있다. 이 어린 것을 그저 한번 욕구의 대상으로 삼았다가 처참하게 죽여 버린,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그자의 어머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은 또 오죽하랴. 제 핏덩이도 아닌 것을 그저 가여운 생명 하나 살리겠다고 양아들로 삼은 어머니다. 착하디 착한 그 어머니는 아들이 이렇게 온 국민의 공분을 모으는 상황을 보며 얼마나 깊은 실의에 빠져 있겠는가.

가해자의 어머니와 피해자의 어머니.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의 마음 깊숙이 각인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두 사람이다. 특히 이 힘든 시절 이 몹쓸 땅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 내야 하는 대한민국 어머니라면 두 사람의 가슴 저림에 더더욱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공감은 두 어머니 중 어느 한쪽으로 절대 기울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피해자의 편에만 서서 "이런 일이 더 이상 없도록 강력한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도, 가해자의 그 허망한 처지만 동정해 "사회적 소외자를 만들지 않는, 따뜻한 나라가 돼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다 틀렸다.

정치권에서 이번 사건을 두고 이런저런 제안과 반론이 있는 모양이다. 가장 뜨겁게 맞붙은 것이 성폭행범 가운데 사형이 언도된 사람에 대해 형을 조속히 집행하라는 여당의 주장이다. 여당은 범죄 예방의 효율성을 이유로 이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반면, 야당은 사형의 비인간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사실 지난 13년간 한국에선 사형 집행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일을 저질러도 적어도 죽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의미에서 사형 집행은 꼭 필요하다. 반대로 인간의 생명권을 무시하고 사형 집행을 일상화하는 것도 곤란하다. 그래서 성폭행 등 심각한 범죄에 대해 사형이 언도될 경우 바로 집행하지 말고 5~10년간 그 사람을 관찰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다면 감형해 주고, 아니라면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다.

전자발찌도 논란의 대상이다. 여당은 "전자발찌는 처벌이 아니라 보안관찰 차원이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소급입법이어서 안 된다"는 의견이다. 그런데 소급입법 불가론은 정말 말이 안 된다. 5, 6공화국을 단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소급입법의 덕이었다. 소급입법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것이 꼭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반면 여당은 더 합리적인 보완책을 제시해야 한다. 사법부에서 사안별로 검토하게 한다는 식으로 대충 넘기려 하지 말고 스스로 소급에 대한 합리적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사실 성폭행범 대처 문제는 여야가 싸울 일이 아니다. 어차피 이유리양 어머니도, 김길태의 양어머니도 만족시켜야 하는 사안 아닌가. 중재자의 입장에서 사회적 논의들이 합일점을 찾도록 앞장서는 정치권의 모습이 보고 싶다.

이은호 정책사회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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