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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고난속에 큰 기회있다] <37> 국토균형발전과 사회간접자본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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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의 고난속에 큰 기회있다] <37> 국토균형발전과 사회간접자본 건설

입력
2010.03.15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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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건설 다음의 건설부 역점사업은 국토균형발전과 사회간접자본 건설이었다. 1970년에서 87년까지 17년 동안 수도권 집중도 추이를 보면 인구는 28%에서 40%로, 제조업체 수는 33%에서 57%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수도권 집중현상은 갈수록 심화되는 추세였고 이 추세를 막지 못하면 국가적 재앙이 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그래서 노태우 대통령은 국토균형발전을 대선에서 공약했던 것인데 여기에 적극 공감한 나는 이 공약의 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우선 이미 수립되어 추진되어온 수도권 개발계획을 전면 축소 재조정했다. 당초 91년에 매립을 시작하여 3,00백만 평의 도시와 공단 그리고 농경지를 만들려던 시화지구 2단계사업도 축소키로 했다. 그리고 수도권에는 신규 공업단지의 조성을 금지하고 수도권 내 신규공장의 신설은 수도권 도시에서 이전해오는 경우에 한하여 허가하도록 했다.

공공청사의 신ㆍ증설 규제도 강화하였다. 서울시내의 고층건물 신축에는 환경과 교통 등의 영향평가 기준을 강화하고 개발부담금을 부과하여 강력히 규제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재임 중에는 고층건물 신축이 목동의 기독교방송 등 매우 제한된 경우에 한해 허가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토균형개발사업의 핵심은 서해안개발이었다. 서해안이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1987년의 경우 서해안 지역은 인구는 전국의 21%였으나 매년 0.42%씩 감소했으며 1인당 총생산액도 전국 평균의 78%에 불과했다.

특히 소외가 심한 지역이 호남이었다. 그래서 서해안 고속도로 건설, 군장산업기지 건설, 새만금개발 사업 등이 서해안 개발사업의 중점사업으로 추진된 것이다.

서울- 목포간 서해안 고속도로는 노태우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업이어서 청와대에서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초 국토개발연구원에서 올라온 노선은 서울- 인천의 중간지점에서 출발하여 아산만을 피해 안중과 삽교 예산 홍성 등을 지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심대평 충남지사는 아산만을 가로지르는 현재의 노선을 희망했고 이를 청와대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이 노선은 국가 예산이 훨씬 많이 소요된다는 문제가 있었으나 지나고 보니 서해안개발이라는 기본 취지에는 오히려 잘 된 결정이었다고 생각된다.

군장산업기지 사업은 호남지역의 공업시설이 너무 낙후되어 이에 대한 대책으로 추진한 사업이었다. 당시 건설부에서는 군산항의 퇴적토를 준설하여 조성되는 209만 평에 대한 제 1단계사업을 추진하였는데 그 기공식을 89년2월20일 군산 현장에서 올렸다.

이 기공식에는 대통령 내외분을 비롯하여 전북지사와 군산시장 그리고 임방현 국회의원 등 많은 내빈이 참석했는데 나는 여기서 사업보고를 했다. 그 후 이 사업은 480만 평으로 그 규모가 확대되어 오늘날에는 약 500 개 업체가 입주계약을 맺고 있다.

이와 병행하여 추진된 것이 새만금 개발사업이다. 이 사업은 1987년 황인성 농림부장관이 간척사업으로 추진하려던 것이었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이것을 1987년 대통령선거의 공약사업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런데 당시 야당이었던 평민당의 김대중 총재와 노 대통령과의 정치협상에서 당장 추진하기로 합의하여 이 사업이 실행에 옮겨지게 되었다. 이 사업은 관계부처의 협조 하에 농수산부가 주관하였는데 33㎞의 방조제와 여기서 생기는 401㎢의 새 국토는 미래 한국의 명물이 될 것이다.

서해안 개발과 관련한 하나의 일화가 있다. 광주광역시(당시 직할시)에는 철도가 시내를 관통하여 매년 많은 인명피해와 불편이 있어서 오래 전부터 이전을 건의해왔다. 그때 광주는 1980년의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갈등과 소외감이 깊었고 이것은 정부에도 큰 부담이었다.

때마침 호남선 복선화 공사가 완성되어 노태우 대통령 내외분이 참석하는 준공식이 88년 9월 6일에 광주에서 있을 예정이었다. 경제수석이던 나는 그때 철도이전 선물을 가지고 광주에 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대통령께 건의드렸다. 소요예산을 묻기에 약 400억 원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곰곰이 생각하고는 좋다 하시면서 후속대책을 세우라 하셨다.

나는 즉시 최인기 당시 광주시장에게 이를 귀띔하고 준공식 후에 마련되는 대화현장에서 대통령께 건의 드리도록 했다. 그리고 당초에는 나웅배 부총리가 가지 않기로 되어 있었으나 수행원에 추가하여 현장에서 대통령의 지시를 직접 받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420억 원의 예산이 확보되었던 것이다.

나의 재임 중 추진한 고속도로 사업은 신규 사업으로서 서해안 고속도로 이외에 대구-춘천 간 280㎞의 중앙고속도로와 대전-진주 간 161㎞의 고속도로가 있다. 96㎞의 대구-구포 간 고속도로와 235㎞의 중부내륙고속도로는 타당성 조사를 마쳐 건설키로 확정한 상태였다.

89년 중앙고속도로의 첫 삽을 뜰 때 대구와 춘천에서 동시에 기공식을 하기로 했는데 당시 이춘구 내무장관이 왜 충청도만 빼놓느냐고 항의하여 그분의 지역구인 제천도 추가했던 기억이 있다.

이 밖에 다목적 댐으로 내가 준공하거나 추진한 사업은 주암댐 임하댐 남강댐 부안댐 등이 있다. 그리고 산업기지 건설은 군장공단 외에 충남의 아산공단 경남의 명지녹산공단 전남의 대불공단 등이 있는데 특히 부산과 경남의 행정구역을 포함하고 있는 명지녹산공단은 두 지자체간의 의견 차이로 오래도록 추진이 지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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