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채용 대가로 뒷돈 수수, 학교 기자재 납품단가 부풀려 국고보조금 챙기기, 학생 부정 선발, 학생 기숙사비 빼돌리기, 도의원에게 뇌물 상납….'
조리 분야 특성화고로 유명한 경기 시흥시 H고가 '비리 백화점'으로 불릴 만큼 수년동안 갖가지 교육 비리를 저질러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부인을 재단 이사장으로 둔 이 학교 교장이 조카 등 친인척과 함께 마구잡이로 학교를 운영하는 동안 교육당국의 감사마저 부실했던 것으로 드러나 교육 현장의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1999년 조리 분야 최초의 특성화고로 개교한 H고는 입학 경쟁률이 3~4대 1에 이르고, 2007년 10월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가 '마이스터고'공약을 구체화하기 위해 방문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하지만 경찰이 11일 밝힌 이 학교의 실상은 교육 비리의 완결판이었다. 진모(73) 교장은 지난해 2월 신입교사 2명을 채용하면서 각각 5,000만원씩 받아 챙겼다. 이들이 직접 시험문제를 출제토록 하고 스스로 채점하게 해 마치 시험을 거쳐 정식 합격한 것처럼 꾸몄다. 진 교장은 2003년부터 5년간 모두 8명의 교사로부터 각각 500만~5,000만원을 채용 대가로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진 교장은 또 2005년부터 납품업체들에게 주방기구 등의 납품 단가를 높게 제출하도록 한 뒤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1억2,400여만원을 챙겼고, 국가보조금 8,900만원도 부풀려 받았다. 한 학기 기숙사비로 1인당 150만원가량 받으면서 방 한 칸에 학생 8~10명이 쓰게 하거나 값이 싼 식자재를 사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기숙사 운영비 1억여원도 빼돌렸다. 소 도축 및 고기손질 실습 과정을 한 것처럼 꾸며 소 값 480만원을 챙기기도 했다.
진 교장은 이를 위해 행정실 직원과 교사들에게 영수증 등 서류 조작을 종용하거나 재촉했다. 진씨의 조카였던 오모(42) 행정부장마저 수첩에 "죽고 싶다"는 말을 빼곡히 적어놓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지난해 뇌출혈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진 교장은 이렇게 빼돌린 5억4,000여만원을 부동산 매입이나 자녀 유학비 등으로 사용했다.
'요리사'가 꿈인 학생들에게도 상처를 남겼다. 검정고시 출신 김모(16)군은 지난해 말 이 학교를 지원했으나 좋은 점수를 받고도 떨어졌다. 검정고시 출신자는 탈락시키라는 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김군 외에도 올해 신입생 240명 중 15명이 억울하게 떨어졌고, 다른 15명이 대신 합격한 것으로 조사됐다. 진 교장은 지난해 2월 경기도의회 황모(50) 의원에게 학교를 지원해줘 감사하다며 시민단체 교육 수강료 400만원을 대신 납부해줬다.
경기도교육청은 2008년 종합감사 당시 이 학교 재단이 부동산을 매입하는데 학교운영비 일부가 사용된 사실을 적발하고도 주의 경고를 한 것 말고는 그 동안 별다른 조치를 내린 적이 없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진 교장과 이모(45) 교무부장에 대해 횡령, 배임수재,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진 교장의 조카인 진모(50) 재단 사무국장과 오 행정부장 등 3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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