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실수가 가져올 결과가 부담스러웠을 법도 한데 김연아는 고난도의 점프를 사뿐히 뛰고 환하게 웃으며 착지했다. 김연아의 미소를 보니 그녀가 이 순간을 정말 즐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방송으로 김연아의 점프를 볼 때마다 떨려서 눈을 감아버리거나 경쟁선수들의 실수에도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순간 예술'의 어려움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피겨 스케이팅은 스포츠이지만 최근 예술성의 비중이 커졌고 클래식 음악계의 경우 어린 나이에 고난도 테크닉을 쌓는 경우가 많다 보니 두 분야의 많은 부분이 오버랩 되고 있다.
음악학도들도 피겨 선수들처럼 어릴 적부터 연습과 경쟁 속에 치열하게 산다. 주어진 짧은 시간에 자신의 기량을 발휘해야 하니 심적 부담이 커서 재능과 실력뿐 아니라 담력까지 갖추어야 한다. 예상 못한 실수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하며 김연아처럼 라이벌의 선전에도 담담해야 한다.
음악계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가 재작년 러시아에서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수학 중인 북한 여학생이 뛰어난 테크닉으로 안정감 있는 연주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우승 후보로 점쳐졌다. 북한 정부에서 특별히 고가의 바이올린을 구매해 주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 부담감 탓인지, 정작 콩쿠르에서는 사소한 실수에 당황하고 어이없이 무너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입시나 오디션, 콩쿠르 등 자신의 인생 행보와 직결되는 무대에서 온전히 음악을 즐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수로 인한 감점에 신경 쓰다 보면 더욱 그렇다. 자녀가 악기를 하면 집안에 온종일 아름다운 음악이 흐를 것이라 기대했다가 막상 같은 부분을 수백 번씩 반복 연습하는 것을 듣느라 고생하거나 휴가 한 번 제대로 못 가서 후회하는 분들도 많다. 김연아의 아버지처럼 콩쿠르 때 차마 보지 못하고 복도에 서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평소에 배짱 있는 연주로 부모님을 안심시켰던 학생들도 무대에서 큰 실수를 경험하고 극도로 소심해지기도 한다. 시험 중 악보를 잊어버리고 어깨가 축 쳐진 학생들을 보면 당장의 결과보다는 앞으로의 후유증을 걱정하게 된다. 아사다 마오가 장기였던 점프에서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던 것처럼 말이다. 철저한 준비만큼이나 강심장이 요구되다 보니 어떤 부모들은 자녀에게 양궁 선수들이 한다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키거나 비타민을 떨리지 않는 약으로 속여 플라시보 효과를 노리기도 한다.
유명인도 예외는 아니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도 7세 때부터 시작된 무대 공포증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평생 노력하였다. 협연하다 몸이 굳어져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버리고 작곡가가 된 시벨리우스도 있다. 정경화의 반주를 맡았던 이타마르 골란은 암보(暗譜), 악보를 외어 연주를 하다 실수한 이후에 악보를 보는 반주자로 전향해 더 큰 커리어를 쌓았으니 전화위복이라 하겠다.
부담을 떨치고 오직 그 순간을 즐겼다는 김연아가 경기를 마치고 흘린 눈물은 그 간의 훈련과 마음고생을 대변한다. '순간 예술'은 한 번의 결실을 맺는다고 다음 번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만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기에 열매가 맺어지는 무대에 대한 감동과 경외가 큰 것이다. 논어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다. 무대를 마음껏 즐기기 위해 기꺼이 땀 흘릴 줄 아는 어린 선수들과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대환 바이올리니스트·국민대 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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